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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기고]3·1운동 평화혁명 운동으로… 영천의 만세운동 4월 12일 시작
김경록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
2020년 03월 05일(목) 19:52 1101호 [영천시민뉴스]
 

ⓒ 영천시민뉴스
일제의 강점에 의해 10여년의 식민통치를 경험한 한국인들은 1902년 고종즉위 40년을 기념한 서울의 한 복판에 세워진 팔각정에 1919년 3월 1일, 독립의 열망으로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고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이미 일제의 총과 칼이 얼마나 잔인한지 잘 알고 있던 한국인은 왜 그리 100여 년 전에 이렇게 거리로 모여들었다. 한국인의 마음속에 표출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그 무엇이 있어 그리도 겁 없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을까? 한국사 5000년 동안 이 땅에 살았던 한국인은 자기의사를 이처럼 처절하게 외쳤던 기억이 있었던가? 2020년 3·1절을 맞이하며 이런 의문을 가져본다.

1910년 한반도에서 대한제국을 불법 강점한 일제는 총독부를 설치하여 무단통치를 시작하여 10여 년 동안 한국인을 탄압했다. 일제의 탄압적인 식민지배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은 독립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1918년 11월 세계전쟁의 종전은 새로운 세계질서를 초래하였으며, 이 과정에 독립전쟁을 전개하던 한국인은 파리에서 열리는 평화회담에 한국의 독립과 한국인의 독립의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한국인의 독립의지는 1919년 일본유학생을 중심으로 ‘2·8독립선언서’가 작성되었으며, 만주에서 여러 독립지사들이 모여 ‘대한독립선언서’가 발표되었다. 조소앙 선생이 기초한 이 선언서는 대한의 독립군은 한민족의 위임을 받아 활동하며 한민족과 동아시아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인류와 타협할 수 없는 적으로 일본을 규정하고 독립전쟁은 ‘天(하늘)의 인도와 대동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신성하고도 정의로운 전쟁이며 자기희생의 비장한 결단에 의해서만 민족의 독립이 성취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국내에서 독립지사들은 독립운동을 대중화하고 일원화하며 비폭력으로 하고자 민족대연합전선을 형성하고 독립운동을 조직화하였다. 서울을 중심으로 38자 46행으로서 6소절의 본문과 강령인 공약3장으로 구성된 ‘독립선언서’는 한국인의 독립의지를 응축적으로 보여준다.

1919년 3월 1일에 민족대표의 독립선언은 큰 역사적 의미가 있다. 3·1절은 서울의 이런 조직적인 독립의지의 천명뿐만 아니라 전국과 해외에서 열화와 같이 펼쳐진 만세시위운동이었다. 3월 1일 학생대표의 파고다공원에서 만세시위와 함께 전국으로 급속하게 퍼져나갔다.

경상북도의 호국고장으로 유구한 역사를 가진 영천의 3·1만세운동은 매우 특이한 면모를 보인다. 서울에 시작된 만세시위는 전국으로 퍼져 영천까지 이어졌는데, 영천에서는 4월 12일 장날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장터에 모인 수많은 남녀가 참여한 만세시위는 일본경찰의 탄압에 직면했다. 당시 영천의 과전동에 살던 최복암(崔福岩)의 부인 김정희(金正希)는 만세시위의 함성을 듣고 감격과 울분에 12일 밤에 1m크기의 흰 비단에 식지를 잘라 한글과 한문으로 “대한독립 만세”를 혈서로 적어 4월 13일 오전 11시에 영천면 과전동에서 창구동으로 만세시위를 하여 일본경찰에 검거되었다. 여인의 몸으로 장터에서 울린 만세시위에 독립의지를 삭힐 수 없었던 김정희는 검거 후 일본경찰의 갖은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징역 8개월 형을 언도 받아 출옥 후 독립운동을 지속했다.

한국인은 3·1운동이후 독립전쟁의 구심점으로 독립정부를 수립하고자 노력하여 결국 상해에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이후 독립군을 비롯한 독립지사들은 임시정부의 군대로서 당당하게 일본군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펼쳤으며 독립전쟁사에 빛나는 봉오동전투, 청산리전투의 승리를 거두었다. 3·1운동은 단순한 만세시위운동의 의미를 넘어선다. 독립군이 아니더라도 지식인이 아니더라도 많은 한국인은 시련의 한국사에서 전국과 해외에서 독립의지를 스스로 자각하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표출함으로써 독립전쟁의 구심점인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전 세계에 한국인의 평화적인 독립의지를 알렸다.

3·1운동은 한국독립전쟁사에서 한국인이 하나되어 처음으로 국민의 정부인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비록 타국이지만 상해에 임시정부를 수립하였던 혁명이었다.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한 한국인의 독립전쟁은 광복을 가져왔으며 이후 남북분단, 6·25전쟁, 민주화, 경제발전 등 100년의 격동시간이 지났다.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여 년의 경험으로 분단되었던 남북이 평화통일되고 한반도의 평화뿐만 아니라 세계평화를 주도하는 새로운 100년의 대한민국으로 발전하길 기원한다.

2020년 3월을 맞이하며 비폭력·평화혁명을 처절하게 보여주었던 한국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3·1절을 되새겨본다.
영천시민신문 기자  smtime@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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