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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의 눈… 영천의 독립운동사 재조명하다③>산남의진(영남의병부대) 창의결성 배경과 인물
2019년 01월 30일(수) 21:03 1048호 [영천시민뉴스]
 

ⓒ 영천시민뉴스
산남의진(영남의병부대)이 결성된 시점을 살펴보면 1904∼1905년 만주와 한국의 지배권을 두고 벌인 러·일 전쟁의 승리로 인해 일본은 한반도에 있어서 확실한 주도권을 쥐게 된다. 국정 운영에 있어서도 1904년 8월 한일협약을 통해 모든 분야에서 일본인의 고문을 받아 국가의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는 고문정치가 시행되고 있어 식민지화의 단초를 제공한 시기였다. 또한 1905년 9월 러·일 포츠머스 조약의 체결은 대한제국의 독점적 배타권 즉 ‘일본이 대한제국을 관리한다.’는 지휘권을 가짐으로서 일본이 대한제국의 실질적 지배권을 국제적으로 용인하게 된 때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이 가장 먼저 빼앗은 것은 외교권이다. 이 을사늑약으로 국권이 박탈되어 전국적으로 각 계층마다 집단적 울분에 쌓여있는 상태였고 이를 계기로 을사의병이 조직되어 무력항쟁이 시작된 것이 ‘2기 의병사’의 시작이다.
을사늑약(외교권 강탈) 이후 1905년 12월 고종은 동엄 정환직에게 “경이 화천(華泉)의 물(水)를 아는가. 짐망(朕望)하노라.” 이 내용은 ‘주군의 상황을 알아 신하가 할 도리를 찾는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고종은 ‘현 대한제국의 상황에서 그대가 해야 할 일을 무엇인지를 찾아서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바로 산남의진이 결성된 동기이다.
부연하자면, 민간 자생적인 의병이기보다는 고종황제의 밀명에 의한 의병이 결성된 셈이다. 정환직은 고종황제의 측근에서 크게 신임을 받은 것으로 추측가능한데, 1899년 화재가 발생 했을 때 황제를 직접 업고 한 걸음에 피신시킨 것으로 보아 그 관계를 미루어 짐작해 볼 수가 있다. 또한 한 나라의 국왕이 밀지를 수행할 만한 인물이라 판단을 내렸다면 정환직의 당시 정치·사회적 상황에 대한 통찰력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만약 고종황제의 밀지를 받지 못했다면 현실적으로 의병항쟁을 실천에 옮기기에는 큰 무리가 따랐을 것으로 보인다. 유림이 가지는 보수적 한계성에 의해 고종황제의 밀명이라는 당위성이 확보된 상황과 당시의 국가 위기의식이 결합하여 영천지역에서 호응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외적 상황에서 1905년 양력 12월 20일 동엄 정환직이 관직을 사퇴하고 아들 정용기와 함께 창의를 계획하고 아버지의 명에 따라 고향으로 내려온 정환직은 영천에 창의소를 마련, 영남지역에 소규모로 활동하던 의병들을 모아 1906년 3월 정용기는 지우인 이한구와 정순기, 손영각 등과 경상도 전역의 1000여 명을 모아 제1차 산남의진을 결성하고 경고문과 통문을 작성하여 경상도 각지에 배포하게 된다.
이때에 1차 산남의진에 편제된 구성과 인물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창의대장 정용기, 중군장 이한구, 참모장 손영각, 소모장 정순기, 도총장 이종곤, 선봉장 홍구섭, 후봉장 서종락, 좌영장 이경구, 우영장 김태언, 연습장 이규필, 도포장 백남신, 좌익장 정치우, 우익장 정래의, 좌포장 이세기, 우포장 정완성, 장영집사 최기보, 군문집사 이두규 이다.
중군장 이한구는 당시 37세로 영일에 거주한 인물이다. 참모장 손영각은 당시 27세로 이한구와 같은 영일인으로 동향의 지인이며, 소모장 정순기는 정용기의 족당으로 산남의진을 결성하는데 이 3명의 인물이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흥해 정래의 부대와 청송에서 활약한 우영장 김태언과 후봉장 서종락, 경주에서 활약하다 들어온 이종곤 등이 편입하면서 연합의병부대 형식의 구성을 갖추게 된다.
현재까지 연구된 200여명의 인적사항으로 보면 경상도 각지에서 모인 농민부터 군인, 광부, 노종사, 포수 등 다양한 구성원들이며 유생들에 의해서 모집되고 훈련된 경향을 가진 의병부대이다.

<다음호에 산남의진 의병부대의 활동을 전합니다.>
박순하 시민기자  smtime@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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