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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의 눈>권응수 장검 선물 받은 것… 주변의 시기로 모함 많아
2019년 01월 08일(화) 19:16 1045호 [영천시민뉴스]
 

ⓒ 영천시민뉴스
권응수의 장검은 선물로 받은 것이다. 임진왜란의 전공으로 선무공신 2등에 책록된 권응수(1546~1608)의 유품 가운데 일본 장검이 하나있다. 길이가 73㎝, 너비가 4㎝, 무게는 2.4㎏이다. 임진왜란 당시 권응수가 일본 장군 키하치(희팔 喜八)에게서 빼앗은 것으로 알려진 장검은 손잡이에 ‘대영 원년(大永元年 1521년)이라 적혀 있는데 1980년 8월 23일 보물 제 668-4호로 지정되었다.
난적휘찬에는 이 칼에 대한 단서가 하나 등장한다. ‘1594년 갑오년, 서생포(울산 울주군)의 왜적들이 틈을 보아 몰래 경주에 침입해 왔는데 병사 고언백 등이 모두 도망쳤으나 별장 권응수만이 홀로 왜적을 맞아 돌격하였다. 말을 바꾸어가면서 번갈아 탄 지 오래되자, 왜적의 기세가 꺾였고 서생포의 둔(일본 왜성)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줄 것을 요구하면서 조선 군사가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뒤에서 칠까 염려하여 장수 한 명이 호송해 주기를 간청하고는, 들어주지 않으면 마땅히 있는 힘을 다하여 싸워서 죽고 사는 것을 결단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권응수가 권황으로 하여금 호송해서 가게 하니, 권황은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격이라 염려하여 울면서 사양했으나 끝내 마지못하여 하는 수 없이 왜적을 지경 밖까지 호송해 주었다. 이에 왜적은 장검을 선물로 주고 가면서 가고 보내는 데 자못 예의가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권응수의 이번 일로 왜적을 위압한 공이 있다고 칭하였다. 권응수 장군은 선조실록과 여러 기록에서 난폭하게 묘사되고 있다.
의성 유생 신흘의 ‘난적휘찬’하권에서는 ‘좌병사 박진이 병으로 체직을 청하여 이해(1593년)에 권응수가 대신했다. 이때 토적들이 다투어 일어나서 곳곳마다 서로 잡아 죽이자, 권응수가 뒤쫓아 가서 잡은 것이 자못 많았다. 하루 인근 산양(삼척, 울진의 옛 이름)의 장시(시장)를 포위해 20여 명을 사로잡아 베어 죽이고 시신을 강물에다 던져버렸다. 이 시기에 권응수는 군대의 위세를 힘써 세우려고 살육한 바가 많은 지 오래 되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권응수도 병사가 되었을 때 왜적을 죽인 바가 많았다. 이들은 대게 한미(가난하고 지체가 변변하지 못한)한 집안 출신으로 갑자기 무거운 직책과 군사들을 통솔하는 권한을 쥐고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까닭은 끝내 적의 칼날을 무릅쓰고라도 감히 선비들보다 뒤처질 수가 없어서였는데 변란후의 전공은 그만한 짝을 이루는 사람은 실로 흔치 않았다. 애석하게도 탐욕스럽다고 욕되이 사람들의 모함을 받아 오랫동안 감옥에 갇혀 거의 벗어날 수 없었는데, 조정이 왜적을 죽인 공이 많다고 하여 권응수를 석방해 주었다.’
앞에서 말한 권응수의 모함은 조선왕조실록 선조 32년 기해(1599) 8월 28일(갑진) 기사에도 나타나고 있다. 그 내용은 ‘사헌부가 윤두수의 일과 포악을 자행한 부호군 권응수의 추국을 청하다.’
“부호군(副護軍) 권응수(權應銖)는 난리를 틈타 입신하여 포학을 자행하였습니다. 조금이라도 여의치 않으면 형장(刑杖)을 혹독히 가하여 사람을 삼대 베듯 죽임으로써 산양(山陽) 한 마을이 모두 살륙당하였으며, 기타 혐의으로 인해 형장에 죽어간 자가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좌도 열읍에 널리 사둔(私屯)을 설치하여 파종하는 것이 거의 200여 석에 이르고 공사천(公私賤)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그들로 하여금 농사짓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도내의 창기(娼妓) 30여 명을 유치하여 가비(家婢)로 만들었으며, 가동(歌童)ㆍ무녀(舞女)를 집에다 잔뜩 데려다 놓고는 날마다 연회를 베풀고 풍악 울리는 것만 일삼기 때문에 그의 호부(豪富)와 기염(氣焰)에 대해 온 도내의 사람으로서 분개해 질타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심지어 십이농 구첩(十二農九妾)이라는 설까지 중외에 나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일 수금하였다가 이내 방면하였으니 실형(失刑)이 이보다 더할 수 없습니다. 이런데도 다스리지 않으면 그의 악행을 더욱 조장하게 되어 뒷사람을 징계할 수 없습니다. 권응수를 다시 나국(拿鞫)하여 그 죄를 바루소서.”
기세등등한 장군이 주변의 시기로 인해 모함을 당하는 장면이라 보이는 대목이다.
박순하 시민기자  smtime@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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