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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영천④]신녕지구 전투 승리로 낙동강방어선 총반격… 피난민 영천에 가득
2020년 07월 02일(목) 08:55 1118호 [영천시민뉴스]
 
올해는 6·25전쟁발발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6·25전쟁은 우리 민족사에서 최대 규모의 재앙을 초래한 동족상잔의 비극이었으나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세대와 자녀세대인 청소년들에게는 점점 멀어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는 옛이야기가 됐다. 안타깝게도 이제 전쟁에 참전했고 그 기억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는 역사의 증인들도 고령으로 인해 생존자가 많이 남지 않았다. 전쟁 이후 태어나 대한민국을 잘사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 땀 흘린 주역들과 지금의 평화나 자유가 너무나 당연한 시대에 태어난 세대들이 공존해 살고 있는 지금, 70년전 이 땅을 지키기 위해 목숨 다해 싸워야만 했던 참혹한 전쟁의 기억을 되새겨보고 자유와 평화의 소중함을 더불어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란다. 필자는 6·25전쟁 당시 기울어가던 국가의 명운을 되살린 우리 영천대첩에 대해 상세히 기록해놓은 책, 몸소 겪은 이들의 이야기와 전투사를 엮어 자료로 쓰기위해 1973년 영천군교육청(교육장 김해인)에서 개간한 ‘6·25와 영천’이라는 책을 입수하여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6·25전쟁 70주년에 즈음하여 지역의 전쟁사에 대해 재조명하고 또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기억하는 것도 미래의 평화와 발전을 위한 중요한 노력이라 여겨서다. 총 10여 차례 걸쳐 연재형식으로 책의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고자 하며 내용은 70년대 당시의 국어표기법에 의거하고 있다.
<편집자주>

↑↑ 피난민의 모습(출처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영천시민뉴스
신녕지구 전투아버지는 이어서 신녕지구 전투에 대해서 더 자세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1950년 8월 초 공산군 제2군 단장 김무정은 공산군 제8사단을 시켜 월성 안강 영일 포항 지구로 침투시키려 계획하고 있었으나 이 공산군 제8사단이 우리 국군 제8사단에 의하여 많은 병력을 잃게 되자 계획을 변경하여 군위군 의흥 등지에서 국군 제6사단과 격전을 하면서 영천군 신녕 일대로 침범하게 하였단다. 그 후 8월 30일경 안에는 신녕 북쪽의 조림산(군위군) 부근에서 국군 제6사단과 대치하기에 이르렀단다. 이 조림산 화산 무암동 화수동 등지에서 밀리고 앞서고 하는 그야말로 피와 피의 대결이 17일 간이나 계속 되었다니 기가 막힐 일이 아닌가? 공산군은 주로 어두운 밤에 쳐들어 왔으며 날이 새면 우리 유엔군의 비행기 포격 때문에 공격을 잘하지 못하였단다. 나중에 국군이 진격하여 쳐들어가 보니 정말 놀라운 일이 있었단다. 공산군은 그들의 기관총 사수를 달아나지 못하게 발에 쇠사슬을 채워 묶어 놓고 진지를 지키게 하였으며 뒤에서는 도망치거나 물러서지 못하도록 감시를 하였단다. 그리고 그 사수들은 모두가 어린 소년병들이었다고 하니 얼마나 잔인무도한 그들인가를 알고도 남을 일이란다.” “아유, 정말 악독하군요. 총알이 날아와도 피하지 못하게 발을 묶어 놓다니 그게 어디 사람이 하는 짓일까요?” 나는 흥분이 되어 큰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니까 공산군 아니고는 하지 못할 짓이지. 이 신녕 지구 전투에서 우리 국군이 동정동 일대의 적을 공격하여 730고지를 탈환하여 보니 ‘어머니’를 부르면서 신음하다 죽어가는 병사가 많았는데 역시 나이가 어린 17, 8세의 소년병들의 수가 더 많았으니 이 나이 어린 소년들을 무조건 전쟁터로 데려다 자기들의 총알 방편으로 삼은 그들이란다. 아버지 전쟁 일기에서도 보아 알겠지만 이 신녕 지구 전투는 조림산 부근 전투와 화산 전투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9월 1일 조림산 부근에 있던 적과 화산동 일대에 대치하고 있던 공산군이 공격하여 왔단다. 이때 우리 국군 제7연대 제1대대(김용배 중령)와 제15연대 제1대대(유재성 소령) 및 제3대대는 용감히 싸워 먼저 화산동 일대에 대치하고 있던 공산군을 완전 격퇴시켰으므로 지금까지 사기가 꺾였던 우리 국군이 힘을 내게 되었단다. 계속하여 유엔군의 제트폭격기가 공산군의 대포알이 날아오는 속에서도 쌩쌩 이산저산 위를 낮게 떠서 적의 지상 부대를 폭격하는 한편, 우리 국군은 포복하여 진격해 들어가니 적은 갈팡질팡 방향을 잃고 무기와 시체를 둔 채 살아남은 자는 도망치기에 바빴단다. 더 자세하게 알고 싶으면 전쟁 일기의 내용을 살펴 봐. 그러한데도 공산군은 9월 7일 새벽을 틈타 인해 전술로 공격해 왔으나 국군 포병의 지원 화력 그리고 각 대대의 박격포 사격과 미 공군 전폭기의 근접지원사격으로 말미암아 공산군의 인해 공격을 여지없이 무찌를 수 있었단다. 9월 8일에는 국군 제7연대 제3대대와 제2대대는 723고지에서 공산군 천여 명을 죽이고 많은 무기를 빼앗았단다. 그날 이후로 공산군은 완전히 전투력을 상실하고 공격할 엄두도 못내고 현 전선을 유지하는데 급급하였단다. 그러나 공산군 총사령부에서는 9월11일 안으로 대구를 점령하라는 엄명을 내렸으니 공산군 제2군단은 더욱 당황하기만 하였단다. 이 신녕 지구 전투 때에는 우리 국군을 돕기 위해 많은 민간인이 탄약을 등에 메고 총알이 빗발치는 속을 뚫고 운반했다니 얼마나 장한 일이냐. 국군 제5사단의 승리야말로 대구의 외곽선을 끝까지 지킬 수 있었던 원동력이며, 대구를 점령하려던 공산군의 계획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었으며 나아가 낙동강 방어선의 총반격을 하게 한 큰 역할을 했단다.”

“아버지, 정말 큰일 날 뻔 했군요. 여기서 우리 국군이 졌다면 대구와 부산까지도 공산군이 쳐들어 갈 뻔 했네요. 우리 고장 신녕에서 그렇게 중요한 전투가 벌어졌다니 믿어지지 않네요. 아저씨는 그 때 영천에 그냥 계셨나요?” 나는 아버지를 좀 쉬게 하려고 아저씨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아니지, 신녕지구 전투가 있기 전에는 영천읍 육군 정훈부대 민간인 후방 요원으로 있으면서 읍민들을 안정시켜 주고 있었단다. 그 때는 날이 갈수록 피난민들이 몰려들어 그 수가 늘어가기만 하였지. 그러던 어느 날 그러니까 신녕 부근 전투가 있기 며칠 전에 정훈 부대 스피커에서 영천읍민들은 더 남쪽지방인 경산 하양 청도 방면으로 피난을 가라고 방송을 하였단다. 나는 피난민들을 안정시켜 조금만 고생하면 다시 영천으로 올 수 있다고 하면서 피난 봇짐을 대강 꾸렸단다. 9월 4일 오전, 영천읍 서문동 근처에 쾅! 하고 적의 포탄이 두세 발 떨어지자 어디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몰려나오는지 수많은 인파가 영천교 다리 밑으로 몰려들었단다. 여든이 넘으신 병든 노인이 지게에 얹혀 나오는가 하면 달구지에 실려 나오기도 하고 어린애들은 업혀지고 안겨져서 나오고 있었다. 모두가 살려고 갈팡질팡 야단들이었단다. 나도 등에 양식과 이불을 짊어지고 그 위에 어린애를 올려놓고 한 손에 큰 애를 잡고 너희 아주머니와 같이 피난민 대열에 끼여 경산 방면으로 걸었단다. 때마침 비가 와서 금호강 물이 많이 불었으나 옷 젖는 것을 생각할 틈도 없이 입은 채로 강물을 건넜지. 경산군 하양면 화산동 어느 과수원에 들려 방을 얻어 피난살이를 했단다. 수많은 피난민들은 남의 집 마룻바닥에서 혹은 헛간에서 그것도 모자라서 마당이나 냇가에서 지냈단다. 나는 매일같이 영천쪽 하늘을 바라보며 하루 속히 우리 국군이 공산군을 무찔러 주기만을 빌고 또 빌었지. 제트기 폭격 소리가 날 때마다 가슴 조이며 우리 국군이 꼭 이기고 말 것이라고 식구들을 달래곤 했단다.” “그랬었지. 그때는 누구나 다 고생이었지.” 아저씨의 말씀을 받아 아버지께서는 신녕지구 전투 이야기의 마지막을 정리하셨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신녕지구 전투는 국군 제6사단의 전 장병이 용감히 싸운 덕분에 승리한 것이라 하겠다. 또 이 전투의 승리가 우리 고장 영천을 지키게 했으며 대구시를 점령하려던 공산군의 계략을 완전히 무너뜨렸고, 나아가 낙동강 방어선의 총반격을 하게 하는 힘이 되었던 것이었단다. 그 후 국군 제6사단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신녕지구 전승비가 세워졌으며 지금도 신녕국민학교 서쪽 개울을 건너 환벽정을 지나 산마루에 오르면 이 산이 성환산인데, 신녕면 소재지와 한밭 넓은 들을 내려다보며 독수리 한 마리가 승리의 월계수를 물고 우뚝 서 있지. 이것이 신녕지구 전승비다.” 이제 완전히 캄캄한 밤이 되어 하늘에는 작은 별들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나는 너무나 실감나게 이야기 하시는 아버지의 신녕지구 전투 이야기에 눈도 하나 까딱하지 않고 앉은 그대로 다 들었습니다.

<정리 : 박순하 시민기자>
박순하 시민기자  smtime@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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