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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탐방】 정연통 천일해운(주) 회장
영천학사건립 주도적 역할… “경로효친 향우회 근간 삼아야”
2012년 10월 23일(화) 10:39 [영천시민신문]
 

↑↑ 정연통 회장
ⓒ 영천시민뉴스
영천시 임고면 선원마을에서 태어난 정연통회장은 6·25동란이 끝난 직후 경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정사정으로 기숙사 및 학비 등 전액국비인 국립해양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1958년 해양대학 항해과를 졸업한 후, 교수요원으로 차출되어 1963년까지 모교의 교수로 재직했다. 해운업계 한국최초로 설립된 민간기업인 극동해운에 스카웃되어 전문경영인으로서 새로운 변신을 하게되었다. 극동해운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 정회장은 그후 대한조선공사로 자리를 옮겨 부사장까지 역임했다. 그러나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또 한번의 변신을 시도한 정연통 회장은, 1978년 해상화물전문운송과 항공화물운송과 보세창고 운영 등 국제적인 복합운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천일해운(주)를 창립하고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그리고 바쁜 회사업무 와중에서도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수료하고 신경영기법을 기업경영에 접목하여 천일해운을 해운업계의 중견업체로 성장시켰다. 그리고 항공화물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천일항운(Air Cargo), 물류회사인 한국터미널(주), 대형선박 예인전문업체인 해강선박(주)를 계열사로 잇달아 설립하여, 명실공히 해운과 항운이 연계된 복합운송체제를 갖춘 그룹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그후 IMF사태의 직격탄을 맞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은 와중에서도 사회봉사활동에도 열정을 쏟아 파고다라이온스 회장을 거쳐 국제라이온스 354(한국) 총재를 역임하기도 했으며, 재경영천향우회장 및 대구경북시도민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지금은 영일정씨 대종회 회장을 맡고있다.
조강호 재경영천향우회장을 비롯한 전한태수석부회장, 윤벽희사무총장은 재경영천향우회 원로고문인 정연통회장을 예방하여, 재경영천향우회 30년사 발간 등 향우회 현안사업에 대해서 설명하고, 자문 및 의견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재경영천향우회 초창기때부터 부회장으로 그리고 11~13대 향우회장을 역임하면서 재경영천학사 건립에 주도적 역할을 하는 등 고향 영천과 재경영천향우회 발전을 위해 많은 기여를 한 정연통 회장은 경로효친(敬老孝親)을 향우회운영의 근간으로 삼아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향우회사무실이 원로회원들의 사랑방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사무실 공간을 좀더 확충하는데 힘써줄것을 요망했다. 조강호 회장은 향우회 재정과 여건을 확보하는데 최선을 다하여 추후 사무실공간을 확충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화답했다. 그리고 정연통회장은 현재 연 2회 시행하는 영천재래시장 방문횟수도 늘여 재경영천향우회원들의 애향심을 고취하고 실질적으로 영천재래시장의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재경영천향우회 30년사 발간의 취지에 적극 공감한다면서 발간비용 1000만원을 기탁할것을 약속하기도했다. 6·25동란후의 고난과 격동의 시절에도 청운의 꿈을 꾸면서 각고의 노력과 정열로 학창시절을 보냈고, 5·16혁명후 근대화과정에서는 기업경영인으로서 국가발전의 한 축을 담당하는 등 끊임없는 도전과 변신을 통해 더 높은 곳을 향한 삶의 목표를 가꾸어온 정연통회장의 생생한 삶의 궤적을 다시한번 더듬어보기위해서 육성을 통한 생생한 회고담을 직접 들어보았다.

- 회장님께서 어린 시절을 보낸 영천에 대한 기억이 있다면?
“우리 고향 임고 선원마을은 오래된 영일 정씨의 집성촌으로, 소슬대문이 있는 전통기와집만 해도 십여채가 넘었고 호구수가 300호나 되는 큰 마을이었던걸로 기억이 납니다. 당시 집에서 30리나 되는 영천중학교까지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걸어서 통학했지만 힘들었다는 기억은 나지않습니다. 아마도 학교에 다닌다는 기쁨이 더 컸던게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그러던 중 10·1사건이 일어나고 인근 마을에 엄청난 회오리바람이 몰아쳤습니다. 당시 인근에서 부자로 유명했던 이활씨 집이 불타고, 향우회장을 역임했던 김진호회장의 백씨도 좌익폭도들에게 희생당했다고 알고있습니다. 당시 혼란스럽고 어려웠던 상황이었는데, 경주에서 경찰생활을 하셨던 백형(정동윤 전 의원의 부친)에 의해 경주중학교로 전학하게 되었고 경주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 6.25동란중인 어려운 시절에 서울법대 진학을 포기하고, 집안형편상 전액국비인 해양대학교에 입학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진학하셨다면 전혀 다른 삶을 사셨을지도… 혹시 후회는 없으신지요.
“그때 서울법대에 진학했더라면… 아마 법조인으로서 삶을 살아왔을 가능성이 높겠지요. 경주고를 졸업했을때가 6·25동란이 끝난 다음해인지라 먹고사는 문제도 힘든 상황이었는데, 서울유학으로 부모님을 힘들게 할수없다는 생각을 했던것같습니다. 당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후회는 되지않습니다. 그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니까요.”

- 또한 해양대학을 졸업하고, 교수들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약관의 나이로 해양대학 교수로 임용되셨는데, 7년후 극동선박으로 옮겨 기업인으로 변신했습니다. 당시의 수재들은 대개 법조계, 교육계 그리고 금융계로 진출하는게 일반적이었다고 알고 있는데… 그때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해양대학에서 7년 가까이 후배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었는데, 교직에 보람을 느끼기도 했지만 뭔가 더 넓고 큰 세상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욕구가 강했던것같습니다. 아마도 교수직이 체질에 맞지않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1964년 극동선박으로 전직하면서 미련없이 교직을 떠나게 되었고, 다행히 체질에 맞아 고기가 물을 만난듯 밤낮없이 일에 몰두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 1978년 지금의 천일해운을 창업하시고 오너경영자로 변신, 크게보면 세번째의 변신을 했고 모두 성공했습니다. 인생의 큰 줄기를 바꿀때의 기준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어렸을때부터 현실의 벽에 부딪히면, 차선을 택하되 새로운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위해서 혼신의 노력을 다했지요. 서울대 진학이 현실적으로 어렵자 해양대학을 택했고 수석으로 졸업했습니다. 그러나 기질상 교수나 학자로서의 삶에 만족을 못했고 기업경영인으로 변신하여 대한조선공사 부사장까지 지냈습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전문경영인으로서의 어떤 한계를 절감하면서 창업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변신을 시도할때마다 그것은 모험이었고 도전이었습니다. 현실에 안주하였다면 그냥 편안한 삶을 살아왔겠지요. 저는 그냥 현재에 안주하여 편안히 사는길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욕심이 컸고, 욕심을 이루기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도전해왔다고 생각합니다.”

- 회장님께서는 사업에 매진하시면서도, 우리 고향 영천에 많은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재경영천향우회 11~13대 회장을 역임하시면서, 향우회발전을 위해 헌신해오셨습니다. 향우회장에 재임하시면서 가장 보람있었던 일이 생각나시면 한말씀 해주시지요?
“재경영천향우회 초창기때부터 부회장직을 맡기도 하면서 나름대로 고향을 위한 일에 봉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제일 보람있었던 일로 생각나는것은 향우회장 재직시, 지금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영천학사의 건립에 일조를 했다는 것이지요. 당시 영천시와 영천시의회에 영천학사 건립을 건의하고 예산승인을 받고, 건물구입 등을 위해 동분서주했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그리고 당시 조재길수석부회장, 정태진부회장, 김득휘부회장 등 많은 분들이 참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 마지막으로 고향후배들과 재경향우회에 당부하고싶은 말씀이 있다면?
“지금 우리는 국가나 사회적으로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고, 풍요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옛날처럼 어려움을 극복하고 도전하는 정신이 많이 부족한것같습니다. 국가사회가 계속 발전하고, 개인 역시 성취를 이루려면 목표를 설정하고 죽기살기로 도전하는 정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으로 살아온 부모님과 선배들, 즉 웃세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향우회도 원로향우 선배들을 위한 사업에 더욱 신경을 써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울본부 기자 최동필
영천시민신문 기자  smtime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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