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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탐방】 50년 법조인 외길인생 김정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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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배려하고 더불어 사는 사회 만들려는 마음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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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31일(월) 14:26 [영천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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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인터뷰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좌측으로부터 윤벽희 재경향우회 사무국장, 조강호 재경영천향우회장, 김정기 변호사, 최동필 서울본부 기자. | | ⓒ 영천시민뉴스 | | 대표적인 영천출신 법조인 중 한사람으로 현재 중견 법무법인인 새한양법무법인의 대표변호사로 재임중인 김정기변호사를 인터뷰하기위해, 재경영천향우회 조강호회장 및 향우회관계자들과 함께 서초동법조타운에 위치한 김정기변호사사무실을 찾게되었다. 북쪽 창문으로 법원과 검찰청이 자리잡은 산모퉁이가 바라보이는 전망좋은 사무실에는 각종 법률서적이 서가에 가득 꽂혀 있었고, 중후한 멋이 풍기는 노신사인 김정기변호사가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오래된 지기인 조강호 회장 일행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눈뒤, 본격적인 인터뷰에 들어갔다. 김정기 변호사는 영천시 자양면 보현리 출신이며 보현초등학교 1회 졸업생이라고 한다. 6·25동란이 터지던 해에 경주중학교에 입학하여 정상적인 수업도 제대로 못받으며 힘들고 어렵게 졸업한 후, 동란이 끝나던 1953년에 경북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1956년에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 입학하여 졸업한 1960년에 고등고시 사법과(12회)에 응시하여 합격했다고 한다. 합격후에는 군법무관을 거처 지방검찰청 검사, 서울지검 부장검사 등을 거치면서 1981년 검찰생활 20년 만에 퇴임하여 변호사로 개업하여 현재 31년이 되었다고 한다.
- 일제시 초등학교 재학중 해방을 맞으셨는데, 그 시절 고향 얘기 좀?
“일제치하에서 일본에 건너가신 부모님 때문에 태어나기는 일본의 오사카에서 태어났습니다. 태평양전쟁이 끝나가던 무렵, 고향인 보현산 자락인 자양면 보현리로 돌아오게 되었지요. 귀국하여 당시의 비정규학교인 간이학교에 다니게 되었는데, 해방이 되면서 보현국민학교로 정규학교로 승격되어 1회졸업생이 되었지요. 1회는 졸업생이 전부 12명으로 1950년에 졸업하였습니다. 일제의 수탈로 엄청나게 피폐된 채 해방을 맞이하였고 정치적 혼란기와 춘궁기가 계속되는 등 정말 힘들게 학교를 다녔던 것 같습니다. 또 당시에는 밤에는북한군들이 산에서 내려와 식량을 강탈해가는 등 주민들을 괴롭혔고, 학교 선생님들은 밤에는 지서가 있는 자양으로 피신하는 일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 6·25동란 중 혼란시기에 경주중학교에 입학하신 사정은?
“보현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외지로 유학하는 것이 어린 나이와 경제사정 등 당시의 여건으로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때 마침 이모님이 경주에 계셨기 때문에 경주로 가게된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입학하자마자 6·25동란이 터져, 학교는 육군병원으로 사용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계림숲, 북천냇가, 경주초등학교 등을 전전하면서 거의 노천수업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졸업반이 되어서야 겨우 학교로 돌아가서 교실에서 공부할 수가 있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전쟁중인 극한적인 상황에서도 학교문을 닫지 않아 공부를 할 수 있었다는게 기적같은 일이었습니다. 당시의 정부나 우리 선배들의 2세교육에 대한 철두철미한 가치관이나 정신이 오늘날의 우리와 발전된 우리나라가 있게한 바탕이 된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 경북고 재학시절은 어땠습니까 ?
“경주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중학교 6년제였던 학제가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으로 분리되어 학제가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이왕 유학생활을 할 바에야 도청소재지가 있는 대처인 대구에 가서 공부하고 싶어, 경북고등학교에 응시했지요. 다행히도 시험에 합격하여 입학하고 보니, 대구 인근은 물론이고 안동, 예천, 영양, 봉화, 청도, 거창 등 경상남북도의 벽지에서 몰려든 지방출신 학생들이 40%이상이 되었던것같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전쟁중인 어려운 시절인데도 당시의 교육열도 정말 대단했던것 같습니다. 영남의 수재라는 자부심과 학구열로 열심히 공부했던것 같습니다. 요즘처럼 풍족하고 여유있는 시절이 아니라서, 딴 생각은 할 틈이 없었지요.”
-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후 바로 사법고시에 합격하셨습니다. 자유당 말기 혼란한 정국과 격동의 시절에 고시공부를 하시고 합격하셨습니다. 많은 어려움을 극복한 얘기를 부탁드립니다.
“1956년에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자유당정권이 부정선거와 고질적인 부정부패로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되면서, 우리사회가 극도로 혼란스러운 시기였습니다. 민주당에서는 신익희선생, 조병옥박사, 장면박사 등이 정권교체를 외치고 부패척결과 민주주의를 외치는 학생들의 함성이 높던 시절이었습니다. 민주주의를 외치던 학생들의 중심 역할을 했던 곳이 아마 서울대 정치학과가 아니었나 생각이 되는군요. 저 역시 저학년 시절에는 친구들과 함께 시위와 시국토론으로 밤을 지새우곤했지요. 그러나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만으로는 세상을 바꿀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고시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국가재건최고회의의 군정시절 군법무관 생활을 하셨는데요. 당시 역사적인 사건(장도영반혁명사건 등 군사재판 관련)이 많았던걸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직접 관련했던 얘기들이 있으신지요?
“육군보병학교 법무3기로 입교하여 군사훈련을 받던 중 사태가 일어나, 전국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되면서 모든 민사재판을 제외한 중요 형사재판은 관할군법회의로 이관되었습니다. 따라서 늘어난 군법무관 수요를 충당하기위하여 6월 10일 수료일정이 당겨져 5월 20일 수료하면서, 대구 5관구사령부 법무관으로 보직발령을 받게되었습니다. 보통군법회의에 근무했던 관계로 장도영반혁명사건같은 큰 정치적사건 등을 맡지는 않았지만 사회혼란을 조장하는 사이비언론기관 및 좌익사상범사건과 대소 군내 사건, 각종민허가 민원사건등으로 밤낮없이 바빴던 기억이 납니다.”
- 오랜 법조생활을 하시면서 벌써 喜壽(희수)를 맞이하셨는데요. 우리 고향 영천에 대한 생각과 고향후배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지요?
“융통성과 사교성도 별로 없고 원칙만을 중시하면서 살아온 법조생활을 한지가 벌써 50년을 훌쩍 넘겨 희수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고향 영천은 조상대대로 선영을 모시면서 살아왔고, 제가 어릴때 자란 곳이고 또한 저를 키워준 곳이라 한번도 잊어본 적이 없는 곳입니다. 지금도 두분의 숙모와 종제들이 살고 있고, 해마다 성묘차 한두번씩은 꼭 고향에 내려갑니다. 보현회라는 친목회와 보현초등학교동창회가 서울에 있어 자주 참석을 하는 편입니다. 우리 고향 영천은 우리를 낳아주고 키워준 곳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고향 영천의 발전을 위해서 힘을 합치고 애써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고향후배들에게 한마디 더 당부를 한다면, 법을 지키면서 법대로 사는 것이 생활의 기본이 되어야합니다. 남을 배려하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고자하는 마음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최동필 서울본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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