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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탐방】 박홍 서강대 명예총장
“영천초등 축구부 주장하고… 100주년 기념행사 특강 흐뭇”
2013년 01월 02일(수) 16:12 [영천시민신문]
 

ⓒ 영천시민뉴스
북한의 공산주의 뿌리인 주체사상의 허구성을 지적하고 주체사상에 물든 학생운동권을 질타한 교육자이며 천주교 사제인 박홍 서강대명예총장을 인터뷰하기 위하여 서강대학교 본관 옆에 있는 낡고 오래된 3층 건물인 사제관을 찾아 박홍총장의 면담을 신청했다. 1층에 있는 검소하고 단출한 접견실에서 기다리자 지팡이에 거구를 의지한 채 건강이 다소 안 좋아 보이는 박홍총장이 내려와 조강호 재경영천향우회장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박홍총장은 1941년 대구에서 태어났지만 영천초등학교와 영천중학교(11회)를 졸업하는 등 청소년 시절을 영천에서 보낸 우리 고향 영천의 자랑스러운 향우이다. 공직에서 은퇴한 후 양조장을 운영하는 독실한 카톨릭신자인 부모님 덕에 유복하고 종교적인 집안분위기에서 자란 박홍총장은 중학교시절 사제의 길을 결심하고 당시 서울에 있는 카톨릭계고교인 성신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사제가 되기 위한 길을 밟기 시작했다. 카톨릭대학교와 광주카톨릭대학에서 8년 동안 철학과 신학을 각각 공부한 후 1970년 사제서품을 받아 신부가 되었다. 그후 도미 유학하여 1974년 세인트루이스대학교에 영성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16세기에 설립된 역사와 전통, 특히 신학과 철학으로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이태리로마교황청소속의 그레고리오대학에 유학하였다. 이곳에서 1979년 영성신학 박사학위를 받고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로서 학자와 교육자로서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1989년부터 8년간 서강대학교 총장으로 재직하였으며 1994년의 전국대학총장초청 청와대오찬에서 ‘주사파의 배후는 김정일’이란 발언으로 큰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고 '주사파'발언 이후 경찰관 2명이 그를 밀착하며 신변을 보호하기도 하였다. 한편 71년 분신자살한 노동자 전태일의 장례미사를 집전해 관계기관에 연행된 경력을 가지고 있는 박홍 총장은 유신시절에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소속으로 독재정권과 투쟁했고 1980년 광주사태의 배후조종자로 몰려 신군부로 끌려가 2주간 고문을 당해 거의 실명될 뻔한 고초를 당하기도 해 운동권 총장이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 때문에 운동권을 비롯한 일반학생들로부터 인기가 높았던 박홍총장은 민주화라는 대의에는 동참해왔으나 폭력, 분신 등 극렬한 운동방식이나 북한의 주체사상을 동경하면서 학습하는 학생운동의 좌경화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보여 왔다. 그동안 좌경운동권에 대해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많은 이들로부터 ‘뿌리 깊은 좌경폭력학생운동에 대항하고 선도하는데 앞장서는 용기 있는 지식인’이라는 공감과 찬사를 듣고 있다.

- 6·25동란후 어렵고 혼란한 시절에 학창시절을 보내셨습니다. 어린 시절 영천에서 자랐던 추억과 학창시절 이야기를 좀 부탁드립니다.
“저는 어린 시절을 영천초등학교와 영천중학교를 다니면서 아름다운 영천의 산야에서 뒹굴면서 자랐습니다. 초등학교때는 축구부 주장을 하기도 하고 체격이 커서 운동은 뭐든 잘했던 것 같아요. 또 조양각아래 금호강에서 겨울에는 썰매를 타면서 놀고, 여름이면 종발로 먹지 등 피라미를 잡던 일과 전쟁직후여서 나무로 만든 칼과 총을 가지고 전쟁놀이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리고 공직에서 은퇴한 아버님이 양조장을 경영해서 비교적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고요. 그런데도 포항에서 올라오는 생선트럭에 올라 생선서리를 하기도 했고 패싸움에 끼여들기도 많이 했으며 정말 악동 짓을 많이도 했던 것 같습니다. 모범생이었던 형제들과 달리 저는 요즘 말로 불량학생이었지만 힘없고 약한 친구를 괴롭히는 놈이 있으면 대신 두들겨주고 혼내주는 남다른 정의감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옛날 친구를 만나면 거칠고 깡패같았던 제가 신부가 되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말들을 합니다. 제가 그동안 언론에 많이 나왔는데도 그냥 동명이인으로 알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지난 2008년에 거행된 영천초등학교 100주년 기념행사에 선배졸업생자격으로 초대되어 특강을 하게 되었습니다. 1000여명이나 되는 학부모님들까지 참석하여 저의 강연에 열띤 성원을 보내주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흐뭇합니다.”

- 개구쟁이 악동이었던 총장님께서 어떤 계기로 사제의 삶을 택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집안에서 성당을 다녔기 때문이겠지요. 영천중학교 2학년때 성당에서 3일동안 피정(避靜)을 가게 되었습니다. 피정기간동안 지금껏 제가 저지른 많은 짓들이 나쁜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하느님은 모든 것을 사랑하고 용서해주신다’는 신부님의 말씀에 서너쪽이 넘는 대학노트에다 빽빽하게 참회문을 적어냈습니다. 혼이 날 각오를 했지만 오히려 칭찬해주고 축복을 내려주시는 신부님 말씀에 감동을 받아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며 남을 위한 삶을 사는 신부가 될 것을 결심했습니다. 신부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처음에는 ‘글쎄…느거 큰형같으면 몰라…’하고 말끝을 흐렸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저를 사제의 길로 인도하셨는지 어린 마음에도 뜻을 굽히지 않고 신부가 되기 위해 카톨릭계 기숙형 고등학교였던 당시의 성신고등학교에 입학하기위해 혼자 서울로 상경한 것이 1957년이었습니다.”

- 또한 총장님께서 평생 천주교 사제로 봉직하면서도 1989년부터 8년간 서강대학교 총장으로 재직하셨고 교육자로서의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그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제가 총장으로 재직한 기간은 유례없이 좌경화된 운동권학생들이 대학을 휘젓고 다니고, 많은 학생들을 주체사상이라는 잘못된 길로 이끌어 가고 있는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나라와 학생들의 장래를 위해, 그들의 생각과 행동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이 총장의 직분이고 사제로서의 소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총장실을 24시간 개방하여 언제라도 그들과 대화하고 토론하는 것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그동안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한 대열에 참여했지만, 그때의 학생운동은 순수했지요. 그러나 학생운동이 좌경화되면서 북한공산주의자들의 수법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 눈에 환하게 보였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같이 공부했습니다. 철학을 공부하면서 공산주의를 깊이 연구했었고, 공산주의의 실체와 허구를 너무나 잘 알기에,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우리 운동권학생들의 좌경화를 막아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내인생의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또한 총장님께서는 서강대 재단이사장이시던 2003년 당시 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 제소되었던 재독학자 송두율 교수를 적극 옹호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우파논객으로 잘 알려진 총장님께서 송교수를 옹호한 이유는 무엇이었는지요?
“당시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있던 송교수를 면회할 기회가 있었지요. 직접 송교수를 만나보니 이사람은 참 순수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송두율 교수가 한국사회에 대해서 잘 모르는 어수룩한 사람이고 북한을 수십차례 방문하고 북한노동당에 가입하는 등 오해할만한 행동을 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남북을 아우르는 남북사이의 경계인이라고 말하는 철학자가 남북분단의 현실과 남북의 이질성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던 일련의 과정으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묵주와 함께 5세기 로마 제국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였던 보이티우스가 저술한 ‘철학의 위안’과 정의채 신부의 ‘존재의 근거’ 등 철학서적 2권을 선물했고, 남북이 화해할 계기를 만들 길이 없는지 함께 찾아보자며 같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맑시즘이나 공산주의는 인간의 빵문제도 인간소외문제도 답을 주지 못하면서 단지 인간의 삶을 하향평준화 시켰을 뿐인 거짓약속을 하는 사상임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정치적 민주화를 달성하고, 세계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발전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대에 뒤떨어진 일부 진보세력의 좌경화문제, 남북문제와 주변국들과의 외교갈등 등 많은 해결과제도 안고 있습니다. 우리사회가 해결해야 될 최우선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우리사회의 가장 암적인 존재인 좌경종북세력들의 오류를 바로잡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공산주의를 선택했고 남한은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했는데, 남한의 선택이 옳다는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북한은 사상적으로 미쳤고, 남한은 자유민주주의의 틀에 공산주의가 파고들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노동계와 군대, 그리고 대학세계에 많이 파고든 종북세력들의 오류를 바로잡아줘야 합니다. 북한은 고장난 비행기와 같습니다. 북한체제는 필연적으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남한에서 자생한 공산주의 세력들이 제도권인 정치계에 침투하려는 시도가 치열합니다. 우리는 이 자생적 공산세력들이 우리사회에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사라지듯이 어둠의 세력인 좌경사상에 우리 젊은이들이 감염되지 않도록 우리 정부와 교육당국이 최선을 다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 총장님은 담배와 술을 즐기시는 것으로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건강은 좀 어떠신지요?
“사실 요즘 건강상태가 썩 좋지 않아요. 얼마 전에 6시간 걸리는 심장수술을 받았습니다. 투석도 받고 있는 중입니다. 잘 알다시피 담배는 줄담배였고, 술은 폭탄주를 18잔이나 마실만큼 애주가였지요. 큰형과 막내동생이 의사라서 오래전부터 금주 금연하라는 경고를 받았지만, 그동안 죽 무시하면서 지내다가 이제는 금주 금연을 확실히 지키고 있습니다. 아직은 제가 해야 될 일이 너무나 많아 건강관리를 위해 자중자애하고 있습니다.”

-최동필 서울본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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