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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공직자 정치인 삶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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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1호 타이틀 전재희 전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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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1월 22일(화) 13:01 [영천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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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영천시민뉴스 | | 전재희 전 보건복지부장관을 인터뷰하기 위해 조강호 재경영천향우회장, 이보령 고문, 전한태 수석부회장, 윤벽희 사무총장과 함께 여의도의 한 식당을 찾았다.
“향우회장님을 비롯한 고향 분들이 저를 찾아주셔서 너무 고맙고 오늘 처럼 추운 날에 여의도까지 오시게 되어 제가 죄송합니다.” 40년이 넘도록 공직생활과 정치인으로 살아온 세월의 연륜이 느껴지지 않는 여유롭고 따뜻한 고향 누님같은 모습의 전 전재희 장관의 첫인사였다. 전 장관은 1949년 영천군 대창면에서 태어나서 창산국민학교에서 5학년이 될 때까지 다녔다. “강도 건너고 넓은 들판을 가로질러 학교 다니던 일이 지금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등하굣길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지금도 너무 생생하게 떠올라요. 특히 하교 길에는 맑은 냇물 속에 놀던 물고기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끝없이 넓게만 보였던 푸른 들판따라 논둑길에 핀 풀꽃들을 따기도 하고요. 교실에서 울려 퍼지던 풍금소리와 동무들과 고무줄하며 놀던 운동장, 그리고 저를 아껴주셨던 선생님들, 생각 나는게 너무 많아요”
총명하고 공부 잘했던 전 장관을 자녀교육에 남다른 열정을 가졌던 모친의 결정으로 초등학교 6학년때 대구로 이사하게 되었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었던지 대구여중 2학년 때부터 가정교사를 하면서 졸업했다. 어린 나이에 힘들었던지 입시를 앞두고 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되었다. 경북여고 입학시험을 칠 때는 모친 등에 업혀서 고사장까지 들어가게 되었는데 이것이 당시 대구지역의 모 신문에 사진과 함께 보도되기도 했다. 그런데 체력장시험을 칠 수 없어 결국 불합격하여 후기였던 대구여고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 후 영남대학교 행정학과에 진학하여 진로를 모색하던 중 3학년 때부터 행정고시를 준비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1973년 행정고시(13회)에 합격하였고 여성합격자로서는 1호를 기록하여 당시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다. 당시에는 여성으로서 행정고시에 도전했다는 것 자체가 화제가 되던 시절이었다.
“거창한 목표나 도전의식을 가지고 행정고시를 준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실은 교직과목을 이수하여 교사가 될 생각을 했었지요. 1학년을 마치고 어려운 형편 탓으로 1학기 휴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복학을 하고보니 교직과목을 이수할 기회를 놓쳐버린 거예요. 당시에는 문과계열의 여자졸업생에게 가장 유망한 진로가 교사가 되는 것이었는데 그래서 고시공부를 해서 공무원으로 취직하자는 생각을 했지요. 취업을 위해서 행정고시 공부를 시작했다는 게 솔직한 얘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교재들은 대부분 남산동 헌책방에서 구입하여 공부했고 먼저 공부를 시작한 선배님들이 서브노트를 빌려주는 등 많은 도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먼저 합격하게 되어 많이 미안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전 장관은 1973년 문화공보부 사무관으로 시작하여 1982년 노동청 부녀소년계장으로 옮긴 이후 부녀지도관, 노동보험국장, 그리고 이사관급인 직업훈련국장을 마지막으로 노동부를 떠나 1994년에는 경기도 광명시장에 부임했다. 오랜 관료생활, 특히 노사문제 및 노동정책이 정부의 중요관심행정으로 부각되던 8~90년대의 노동부에서 보내면서 많은 어려움과 함께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공직생활 내내 저를 따라다닌 여성1호사무관, 여성1호 국장같은 타이틀이 저에게는 상당히 부담이었어요. 제가 여권운동가는 아니었지만 여성이란 접두사를 빼고 동료들과 똑같이 평가받으면서 일하기를 바랐던 게 공직생활을 하면서 일관된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남들이 힘들어하는 부서나 지방청으로도 발령해달라고 했지만 저를 특별히 배려해준 탓인지는 몰라도 저는 줄곧 본청에서만 근무했습니다. 남성 관료중심인 공직사회에서 여자라서 힘들 거라는 등의 고정관념을 극복하는 것이 힘든 일이었지만 노사관계 및 노동복지와 관련한 많은 업무의 개선을 이루어냈던 그 시절이 보람으로 기억됩니다.”
전 장관은 여성 1호였던 광명시장 부임 후 1년만인 1995년 처음 실시된 지자체장선거에서는 초대민선광명시장으로 당선하여 또 한 번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는 관선시장시절부터 판자촌에 사는 주민들의 부엌까지 직접 들여다보고 새벽이면 빗자루를 직접 들고 나가 시내구석구석을 청소하여 ‘빗자루시장’이란 별명이 붙을 만큼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고 소통하면서 쌓은 신뢰관계 때문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가정교사를 하는 등 어려운 환경을 스스로 극복하면서 살아온 전 장관은 서민들의 애환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진정성을 보여주어 주민들의 인기와 사랑을 받는 시장이었다.
“시장재직시절은 항상 주민들과 함께 하는 시정을 펼치는 것이 제 목표였습니다. 주민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고 주민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되는지 우선순위를 정하여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지요. 시장으로 취임한 후 바로 중장기비전 및 발전계획을 수립하여 KTX광명역사 유치, 지하철7호선 광명역 개통, 지역내 3개고교 신설, 그리고 주경환경개선사업에 역점을 두어 발전계획을 하나하나 시행해나갔습니다 .”
2000년 전 장관은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대표의 발탁으로 비례대표 9번으로 16대 국회에 입성하여 정치인으로 변신하면서 한나라당 부대변인으로 활약하게 된다. 그러나 2002년에 현역 국회의원 자리를 내던지고 광명시 재보선에 출마하여 16대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하게 된다. 그리고 이어 17대, 18대 총선에 계속 당선한 3선지역구의원으로 지역구 뿐만아니라, 환경, 여성, 보건복지특위 등에서 활발한 의정활동을 펼쳐왔고 또 여성최초로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의장을 지내면서 정치인으로 입지를 굳혀왔다.
“저는 일단 제가 맡은 일에 대해서는 남보다 더 열심히 하고 올인 하면서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편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저는 정치인이기보다는 행정관료로서의 역할이 더 좋았던 같습니다. 행정은 제가 열심히 하는 만큼 결과물이 나오잖아요. 그런데 정치는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답답하고 아쉬웠던 적이 많았던 것같습니다.”
그리고 2008년에 보건복지부장관에 취임하게 되었다. 2년간의 재직기간동안 전 장관은 오랜 행정관료로 지내면서 쌓은 경륜과 국회에서의 여성 및 보건복지특위와 정책위의장으로서의 국정경험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장애인연금 및 기초노령연금제도와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정착시킨 주역이 전 장관이다. 그리고 출산장려를 위해서는 정부의 적자재정도 감수해야된다고 할 정도로 저출산문제 해결에 심혈을 쏟았다.
“출산장려에 대한 저의 생각은 지금도 똑 같습니다. 출산장려는 범국민운동같은 단순한 캠페인으로는 안 되고 정부의 강력한 정책지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노령화사회가 가져올 국가경쟁력하락 등 천문학적 사회적비용을 생각하면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더라도 저출산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고 봅니다.”
최근 언론에서 ‘작은 결혼식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전 장관은 2009년에 아들을 결혼시키면서 이미 이를 실천했다. 보건복지부 직원들에게는 물론 가까운 집안친척들을 제외한 지인들에게도 청첩을 하지 않아 나중에 많은 이들이 서운해 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행정고시 합격에서부터 시작하여 수많은 여성타이틀 1호를 기록한 전 장관이지만 지난 40여년동안 여성이 아닌 행정관료로서 그리고 정치인으로서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공직자로서의 귀감을 보여준 전장관의 삶을 이끌어준 어머니 조추자 여사와 부군인 조달청 차장을 지낸 김형율 씨와의 로맨틱한 결혼과 결혼생활에 대해서 물어보는 것으로 인터뷰를 끝냈다.
“한마디로 말해 오늘날의 저를 있게 한 분이 저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저에게 큰 뜻과 꿈을 심어줄려고 노력하신 분이지요. 어머니는 많이 못 배우신 분이지만 사회와 국가에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면서 어머니가 아시는 애국지사 얘기들을 많이 하시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나는 어려운 일을 만나면 힘이 더 난다’면서 가난했지만 남을 돕는 일에도 힘을 아끼지 않는 아주 강인한 분이셨지요. 오랜 공직생활을 하면서 나름대로의 소명의식을 갖고 일할 수 있었던 것도 어머니의 남다른 교육에 대한 열정 때문이라고 지금도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와 함께 가장 중요하고 공직자로서의 삶을 살아오는데 큰 힘이 된 이가 저의 남편입니다. 남편을 만나게 된 것은 저에게는 행운이자 하느님의 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행정고시에 합격했을 때 수천통의 격려편지가 왔었는데 고지식하게도 일일이 다 답장을 했더랍니다. 그런데 남편이 봉투 겉봉에 쓴 이름의 한자가 틀렸다고 다시 답장을 보내온 것을 계기로 교제하게 되었고 3년 후에 결혼하였습니다. 강릉사람인 남편은 당시 저보다 한 살 연하로 그 전해 기술고시에 최연소로 합격하여 저와 같이 공직자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남편은 가정을 꾸려가면서 평생을 저에게 양보하고 도와주어 저의 공직생활에 큰 버팀목이 되어준 고마운 사람입니다.”
-최동필 서울본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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