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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꿈을 가지고 끊임없이 도전…목표설정도 중요”
권순대 전 인도대사
2013년 02월 07일(목) 14:31 [영천시민신문]
 

ⓒ 영천시민뉴스
1942년 영천군 화남면에서 태어난 권순대 전 인도대사는 화산초등학교와 신령중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리고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1958년 국립체신고등학교에 입학하여 3년간 국비로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고 국비교육에 대한 의무복무를 마친 후 1963년에 서울법대에 진학하였다. 고학으로 대학을 다니면서도 외무고시를 준비하여 1967년 대학 졸업하던 해에 외무고시(1기)에 합격하여 외무부 미주국 근무를 시작으로 외교관의 길을 걷게 된다. 1970년 주 프랑스대사관 3등서기관으로 부임하였고 1972년에는 주 코트디봐르대사관 2등서기관으로 승진하여 외교관으로 본격적인 외교활동을 펼치게 된다. 그 후 본부에 돌아와 여러 부서를 거친 뒤 1977년에는 주 벨기에대사관 1등서기관, 1981년 파기스탄총영사관 영사로 근무하였다. 그 후 본부 미주국 안보과장, 주영대사관 정무참사관을 거쳐 1987년에는 주 벨기에대사관과 주EU대표부 공사로 근무하였다. 그리고 1991년 외교부로 복귀하여 감사관과 문화외교국장을 역임한 후 1993년 주 케냐대사로 부임하였다. 1996년에는 대구시 자문대사로도 근무하기도 하면서 1998년 주 스위스대사로 부임하였고 2002년에는 주 인도대사로 부임하여 2004년까지 근무한 뒤 퇴임하였다. 퇴임시에는 37년동안 외교관으로 활동한 공적으로 황조근정훈장을 수여받았다. 퇴임 후에는 부산대학교에서 초빙교수로 2007년까지 재직하였으며 2008년부터 2011년까지는 창원대학교에서 초빙교수 겸 자문관으로 재직하였다. 2007년 이명박 대통령이 인도방문시 동행하였고 이명박 선거캠프에서 외교안보특보로도 활동하였다. 2004년 영천국회의원 재선거 때 한나라당예비후보로 등록하여 선거운동을 했으나 공천에 실패하면서 정치의 꿈을 접고 지금은 경기도 양평에서 은거하면서 평생에 걸친 외교관생활에 대한 회고록을 집필중이다.

- 대사는 초등학교 재학시절 6·25동란을 겪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 고향 영천의 모습과 기억들이 있다면?
“6·25동란이 일어나 학교에는 군인들이 주둔하게 되어 전교생이 강 건너 용평성당과 강변자갈밭에서 수업 받던 일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한창 전쟁 중이었고 특히 영천지역은 치열한 교전 지역이었는데도 야외에서나마 학교수업을 계속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당시의 정치지도자 및 교육자들의 교육에 대한 신념과 우리 부모님들의 교육열 때문이겠지요. 전 세계인들이 경이롭게 생각하는 오늘날의 발전된 대한민국의 원동력이 된 교육열은 전쟁 중에도 예외가 아니었나봅니다.”

- 대사는 동란 후 신령중학교를 졸업하고 1958년 당시 기숙사까지 전액국비여서 전국에서 가난한 수재들이 모여들었던 서울 용산에 있던 국립체신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신령중학교 졸업반 때는 대구에 있는 명문고로 진학하고 싶었지만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고민하고 있던 중 담임선생님의 권고로 전액 국비이고 특차인 서울에 있는 국립체신고등학교에 응시하게 되었지요. 경북지역의 응시생은 모두 대구에 모여서 시험을 쳤는데 경쟁률이 거의 40대1이 될 정도로 높았습니다. 합격통지를 받자 온 동네사람들이 축하해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시골학교지만 서울에서 피난 내려온 훌륭한 선생님들이 많아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큰 행운이었던 것 같습니다.”

- 체신고등학교 줄업 후 체신공무원으로 의무복무중인 1963년 서울법대에 합격했습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요?
“체신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4·19혁명이 일어나고 소용돌이치는 정국의 영향을 받아 학교에서도 교장이 축출되는 등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졸업 후 중앙전신전화국 근무를 시작으로 체신부 공무원이 되었으나 대학에 진학하고 싶은 열망이 점점 커지기만 했습니다. 체신고의 교육과정은 입시교육과는 거리가 멀어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대학진학을 위해 주경야독하는 참으로 고단한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영천의 금호우체국에서 근무를 하던 1963년에 그토록 열망했던 서울법대에 진학 할수 있었습니다.”

- 고학으로 서울법대를 다니면서도 졸업하던 1967년에 제1회 외무고시에 합격했습니다. 당시 지방출신의 서울법대생들은 대부분 사법고시를 많이 했을 텐데요. 더구나 외국어 실력이 필수인 외무고시에 도전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요?
“사실 서울법대에 진학했을 때는 사법고시를 통해 법조계 진출을 꿈꾸기도 했지요. 체신고 동기 중에도 대법관과 선관위원장까지 지낸 이가 있었지요. 그러나 대학재학시절 한일회담반대데모에 참가하기도 하면서 정치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정치인이 될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체신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서울법대진학을 준비하던 시절 용산에서 인천으로 운행하던 미군화물열차에 근무하던 미군들을 통해 영어회화를 익혔던 경험 때문에 영어와 불어 등 외국어에 자신이 있어 외교관이 되어 전 세계를 누비면서 활동하고 싶은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1967년에 5·16 후 폐지되었던 외무고시가 다시 부활되면서 응시할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바로 합격(1기)이 되어 외교관의 꿈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 대사는 프랑스, 벨기에, 스위스, 케냐, 파기스탄, 인도 등에서 외교관생활을 하면서 우리나라의 국제외교분야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37년간의 외무관료 생활을 회고해 보신다면?
“외교관이란 본국정부의 지시와 훈령에 따라 외교활동을 수행하지만 주재국정부로부터 여러 가지 복잡한 국제적 외교문제에 대해 대한민국의 입장을 설명하고 지지와 협조를 얻어내야 하는 임무를 수행해야하는 직책이지요. 또한 대한민국의 국위를 드높이고 위상을 대표한다는 자부심으로 항상 긴장되는 생활을 해야 됩니다. 오랜 외교관 생활을 돌이켜보면 지금도 뿌듯하고 기뻤던 일들이 많이 떠오릅니다. 1993년에 부임하여 3년간 근무한 케냐와 우간다겸임대사 재직시 2002월드컵유치를 위하여 일본과 치열한 외교전을 펼치면서 아프리카 출신의 FIFA집행위원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던 일과 한국의 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선출에 대한 지지를 확보했던 일이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뿌듯한 기억으로 떠오릅니다. 1998년부터 3년간의 스위스대사 재직 시에는 취리히에서 유럽에서는 처음으로 ‘한국미술5천년전’을 개최하여 한국역사와 문화의 우수성을 소개하여 많은 호응을 이끌었고 당시의 현안이었던 스위스자본의 한국투자유치를 성공으로 이끄는데도 많은 도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2002년에는 인도대사로 부임하여 2년동안 많은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인도는 국제사회에서 제3세계 비동맹국들의 맹주로 군림하면서 미국의 동맹국인 우리나라와는 많은 외교적 마찰이 있었습니다. 수교 30년이 되는 2003년을 전후하여 많은 외교적인 행사와 활동을 벌였는데 이때 ‘한국과 인도 수교 30년사’를 발간하였습니다. 이 책자는 지금도 주한인도대사관의 인도외교관들의 교과서가 될 정도로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 특히 케냐대사 시절 전문산악인들도 힘들어하는 아프리카 최고봉인 킬리만자로 정상을 등정하여 당시 외교가의 화제가 되었다고 하던데요?
“킬리만자로산은 만년설과 영화, 음악 등으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산이지요. 전문산악인들만 올라가는 그런 험준한 산은 아니지만 고산병에 걸려 목숨을 잃는 사고도 많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탄자니아대사, 인도네시아대사, 필리핀대사 등 4명의 대사와 BBC기자와 같이 포터, 가이드들의 안내와 도움을 받았지요. 3일간의 대장정 끝에 정상에 올랐는데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온통 눈과 빙산, 화산분화구와 바위뿐이었으나 대자연의 장엄한 광경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지만 영하30도나 되는 엄청난 추위에 오래 머물 수는 없었습니다.”

- 대사는 유소년시절부터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고위외교관으로 국제외교무대에서 대한민국의 국익과 위상을 높이는데 평생을 바쳤습니다. 청운의 꿈을 꾸고 있는 고향후배들을 위해 조언을 부탁합니다.
“저는 아직도 세상에는 노력해서 안 될 일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평생 그렇게 생각하면서 남들보다 더욱 노력하면서 살아왔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한 가지 목표를 설정하고 거기에 매진하다보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지요. 이제 세상이 너무나 많이 바뀌었고,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 사람을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은 끊임없는 도전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전정신을 잃어버리면 꿈을 잃어버리는 거나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제가 꿈에도 잊지 못하는 우리 고향의 후배여러분! 큰 꿈을 가지고 끊임없이 도전하십시오!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최동필 서울본부 기자
영천시민신문 기자  smtime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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