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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서 위안의 밤 행사 개최… 영천사랑모임 면면이 이어져
방송작가 최홍준 선생
2013년 02월 27일(수) 16:52 [영천시민신문]
 
방송작가 최홍준 선생의 아명은 홍목이다. 1942년 영천시 조교동에서 태어나 1954년 영천중앙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영천중학교와 영천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64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1967년 KBS방송국에 입사하여 PD겸 방송작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후 TV와 라디오방송을 오가면서 ‘인간승리’ ‘특별수사본부’ ‘여인백년’ 등 일일연속극과 시사프로그램인 ‘오늘을 생각한다’ 그리고 TV주간다큐멘터리 ‘개항백년’ 등 중장년층의 기억에 남을 만한 수많은 작품을 집필해왔다. 예전 극장에 가면 본영화가 상영되기 직전에 방영되는 태극기가 휘날리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대한뉴스를 기억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1970년부터 시작하여 1995년까지 25년 동안이나 계속된 대한뉴스의 대본을 쓴 이가 바로 최홍준 선생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김삿갓 북한방랑기’라는 제목으로 방송된 5분짜리 라디오드라마도 당시 중앙정보부로부터 제공받는 간단한 북한자료를 바탕으로 최홍준 선생이 각색하여 대본을 쓴 작품이다. 그러면서 북한정보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1995년에는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에 입학하여 북한학을 전공하고 북한종교문제에 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또 그가 대본을 쓴 ‘소리의 고향’ ‘우리는 증언한다’등의 방송프로그램이 대한민국 방송대상인 대통령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특히 ‘소리의 고향 ’은 베틀소리를 비롯하여 한산세모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소리로 녹취하여 방송함으로서 우리의 전통문화를 소리로 표현하여 방송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여 많은 이들의 찬탄을 자아내게 했다. 그러나 최홍준 선생은 가장 기억나는 TV프로그램으로 당시 대한민국의 전국민과 산하를 감동과 눈물로 적시게 했던 1983년 6월 30일 밤10시에 방영된 이후 그해 11월까지 근 5개월이나 계속된 KBS-1TV의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의 대본을 쓴 일이라고 회고했다. 지금 우리나라의 방송제작기술은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이 되었고 최홍준 선생은 최근 반세기동안의 한국방송의 눈부신 발전을 이끌어온 주역중의 한사람이자 산 증인으로 ‘한국방송사’ ‘한국방송60년사’의 집필위원으로 ‘한국방송70년사’의 감수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독실한 가톨릭신자인 최홍준 선생은 방송인 생활을 하면서도 국내의 중요한 가톨릭교회행사를 진행하는데도 큰 역할을 맡기도 했다. 1981년 여의도광장에서 50만명의 가톨릭신자들이 모인 가운데 개최된 ‘가톨릭조선교구설정 150주년기념 신앙대회’의 대본을 집필했고 1984년과 1989년 교황 요한 바오로2세 방한 여의도광장행사 역시 최홍준 선생이 대본을 집필했다. 대본을 집필하면서 세례 받은 가톨릭신자들의 모임인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협의회와 인연을 맺게 되면서 2000년에 사무총장, 2008년에 부회장을 거쳐 2010년에 회장에 선출되었고 2012년에 재선출되어 현재 연임하고 있다.
재경영천향우회 전한태수석부회장과 함께 서울명동성당 안에 자리한 한국평협 사무실을 방문하여 최홍준 회장에게서 지나간 세월과 우리 고향 영천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 영천에서의 어린 시절 및 초등학교시절의 추억이 있다면?
“초등학교 3학년때 멀리 경산까지 집안 친척들과 함께 피난갔던 일이 희미하게 기억나고요. 4학년때 읍내 성내동으로 이사올 때까지 조교에서 조양국민학교까지 10리 길을 망정벌판과 금호강 따라 등하교했던 일이 많이 기억납니다. 지금 대구 수성성당의 주임신부로 봉직하고 있는 아우 홍길을 같이 데리고 다니느라 힘든 줄도 몰랐던 것 같았습니다. 사시사철 변하는 망정벌판과 금호강변을 따라 학교를 다니면서 나름 문학소년으로서의 감수성이 길러졌던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 5~60년대의 중고등 시절의 추억 및 그때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중학교시절의 친구들이 많이 생각납니다. 서강대총장을 지냈던 박홍, 충북대총장을 지냈던 신방웅, 육사에 진학했던 서헌수, 그리고 초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최상윤 등이지요. 책이 귀했던 그시절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같은 문학서적을 닥치는 대로 독서하면서 막연히 문학에 대한 꿈을 꾸던 시기라 할 수 있겠네요. 시를 쓴다고 끼적거리던 고교시절에는 KBS라디오 심야방송에서 처음으로 클래식음악을 듣고 심취하여 새로운 세상을 느꼈습니다. 그때 느낀 감동과 황홀한 느낌을 ‘포엠 소나타’라는 장시로 써서 교우지에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방송국에 입사하여 ‘고요한 밤에’ ‘마음의 샘터’라는 프로그램을 맡아 대본을 쓰고 직접 제작하면서 클래식음악을 배경으로 깔았을 때의 감회는 남달랐습니다.”

- 60년대의 대학생활은 어떠했었는지, 그리고 방송작가의 길을 가게 된 계기는?
“재학시절 ‘모의국회’나 전공분야 토론회와 국제관계 해외논문 등을 소개하는 일도 열심히 하였지만, 각 대학들의 ‘문학의 밤 행사’에 다니면서 자작시를 낭송하고 ‘고대신문’과 고대문학회에서 발간했던 ‘고대사화집(高大詞華集)’에 시를 발표하는 일에 더 열심이었고 졸업 후에도 지방일간지에 시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문학적 열정이 결국 전공과는 거리가 먼 방송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지금도 한국현대시문학과 독서신문 등에 시작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습니다.”

- 방송작가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방송을 소개해준다면?
“지금은 방송의 각 분야가 아주 세분화되어 방송작가들의 전문분야가 있지만 저는 거의 방송 전 부분에 걸쳐 다양한 장르에 작가로서 또는 연출자로서 참여하였던 것 같습니다. 연속낭독극 ‘이순신’과 ‘양지를 찾아서’ ‘마음의 샘터’ 등 라디오프로그램도 집필했고 당대의 유명배우였던 최무룡씨가 진행했던 ‘노래의 성좌’대본도 집필했습니다. TV다큐맨터리 ‘개항백년’시리즈도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이구요. 그리고 최풍 선생과 김광섭 선생과 함께 집필했던 ‘김삿갓 북한방랑기’도 잊지 못할 프로그램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은 대한민국의 전국민과 산하를 감동과 눈물로 적시게 했던 1983년 6월30일 밤10시에 방영된 이후 그해 11월까지 근 5개월이나 계속된 KBS-1TV의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의 대본을 쓴 일이라고 해야겠지요.”

- 우리 방송의 역사와 눈부신 발전에 큰 역할을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방송의 사회적 역할과 영향에 대해서 말 한다면?
“오늘날 방송이란 많은 국민의 일상생활 속에 스며들면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연관성을 맺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알기 쉽고 구체적인 영상을 통해 매일 일어나는 사건과 오락, 교양, 교육 등의 내용을 현장중심으로 전달하고 있고, 이제는 방송의 우주중계시대를 맞아 국민의 안목과 지식을 더 넓은 세계로 안내해주는 역할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와 국민들의 경제활동의 촉진제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방송의 영향은 개별적이고 직접적이기보다는 넓고 깊은 인간행동의 물리적·심리적 환경을 기반으로 마치 물방울이 모여서 그릇을 넘치게 채우는 것과 같은 작용을 합니다. 즉 사람들의 관찰력과 사고력의 밑뿌리에 눈에 보이게 안 보이게 조금씩 변화를 안겨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현재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협의회 회장을 맡고 계십니다. 한국평협은 어떤 단체인지요?
“2010년에 평협의 2년임기의 회장에 선임되어 작년에 또 1차 연임하게 되었습니다. 한국평협은 한국천주교의 15개교구뿐 아니라 가톨릭언론인회 등 26개 회원단체들로 구성된 성직자가 아닌 평신도들의 협의체입니다. 구속력이 있는 집행부가 아니고 좋은 의견을 나누고 좋은 일을 함께 하기위해 협의하는 말 그대로 협의체입니다. 그래서 평협회장의 역할은 평신도들이 사도직을 잘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지원하는 봉사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500만에 이르는 한국의 천주교도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올바른 삶을 살아가도록 서로 배려하고 격려하면서, 신앙과 우리 삶이 분리되지 않도록 노력하여 우리사회 공동체가 사랑으로 가득 차도록 하는 것이 한국평협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겠지요.”

- 우리 고향 영천에 대한 깊은 그리움이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우리 고향 영천에 대한 소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지금도 고향 영천을 생각하면 우리 9남매를 키워주신 어머님과 어릴 때의 고향산천이 생각나면서 가슴이 뛰는 그리움의 대상입니다. 그동안 9남매의 장남 역할에다 사회생활에 쫓기다보니 고향을 자주 찾아보지 못한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고려대에 재학 중인 1963년 9월 덕수궁에서 한동안 중단되었던 영천학우회 활동을 재기시키기 위한 발기대회를 개최하였고 11월에 제가 회장으로 선출되어 고향 영천을 위한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영천에서 군민들과 각기관장들을 초빙한 가운데 ‘군민위안의 밤’을 개최하기도 하고 타블로이드판으로 영우학보(永友學報)를 창간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고문을 맡아주셨던 영천국회의원이었던 이활 의원이 학우회 모임에 자주 참석하여 격려를 해주고 재정적인 지원도 많이 해주었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영천학우회는 5·16후 계엄령발동에 의한 집회금지 때문에 몇 년간 활동이 중단되었지만 영천학우회 선배들이 전원 4·19에 참여했던 얘기와 사라호태풍 때 서울에서 수재의연금을 모금했던 일도 선배들한테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재경영천향우회가 창립되기 이전 오래전부터 우리고향 영천을 사랑하는 모임은 면면히 이어져왔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최동필 서울본부 기자
영천시민신문 기자  smtime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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