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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죽 한 그릇에 새벽전통시장 온정이 녹아있네
영천공설시장 할매죽집
2013년 12월 16일(월) 14:58 [영천시민신문]
 

↑↑ 새벽시장에 농산물을 팔러온 노인들이 팥죽으로 속을 채우고 있다.
ⓒ 영천시민뉴스
작은 설날이라고도 일컫는 동지는 24절후의 스물두 번째 절기로 일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동짓날에는 팥죽을 먹는 풍속이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그것은 붉은 팥이 잡귀를 쫓아준다는 민간신앙에서 유래한다. 경상도에서는 동지 팥죽을 솔가지에 적셔 집안, 대문, 담벼락, 마당 심지어 마을 입구의 큰 고목에도 뿌렸는데 잡귀를 물리치는데 효과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작은 설(아세, 亞歲)이니 동지팥죽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고 했고 팥 속에 들어있는 찹쌀 단자를 나이 숫자만큼 세어 먹는다고도 했다.
동지를 일주일여 남기고 팥죽을 파는 영천공설시장 내 죽집을 찾아가보았다. ‘할매묵ㆍ죽집’의 주인 이명희(47)씨는 장날 새벽 4시부터 죽 재료 준비에 여념이 없다. 이른 시간 첫 죽을 쑤어 새벽 손님을 맞고 아홉시 쯤 다시 두 번째 죽을 쑨다고 했다.
친정이 화산인 할매죽집 주인은 팥도 찹쌀도 양념도 모두 친정에서 가져다 쓴다. 기름진 땅에서 직접 지은 농산물이니 맛이 없을 리가 없다. 팥은 친정집 마당의 군불에서 삶겨져 죽집으로 온다. 그러고도 채에 두 번 이상 걸러져야 부드러운 앙금이 되고 비로소 죽 쑤는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팥물과 불린 쌀을 함께 눋지 않도록 저어주다가 팥물이 보글보글 끓으면 미리 만들어 놓은 단자를 넣는다. 한참을 더 저으면 익은 단자들이 팥물 사이에서 퐁퐁 솟아오른다. 하지만 여기서 조급해지면 안된다. 아직 다 익은 것이 아니니 말이다. 한참을 더 저어 팥물이 그릇 밖으로 폭폭 튈 즈음에야 드디어 팥죽이 완성된다.
팥죽을 젓던 죽집 주인 명희씨의 얼굴이 갑자기 활짝 피어난다. 곧이어 명희씨의 경쾌하고 생기 있는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어서 오이소!’
임고 효1리에서 농사지은 고추를 내어 팔고, 허전한 속을 채우려고 죽집으로 들어선 조종환(74) 할아버지와 박연자(74) 할머니가 죽집의 좁은 의자에 앉아 팥죽 두 그릇을 시킨다.
“이 집 죽이 맛있어서 장 오는 날이면 일부러 들러요. 새벽에 나온다고 아침밥을 대충 먹었는데 죽이 참 맛있네요”하며 가득 담긴 팥죽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다.
곧이어 자양 신방에서 온 강대성(64) 할아버지와 이필언(64)할머니가 같은 자리에 합석을 한다. 좁은 식당이라 누가 들어와도 같은 상에 그릇을 함께 놓고 얼굴을 맞대며 먹어야 한다.
“새벽에 고추 냈는교.” “옛날에는 동갑이면 궁합볼 것도 없다고 했는데 평생 잘 사셨는교.” 낯선 이들도 말을 섞다보니 오랜 지기처럼 정담이 되어 오간다.
“동지가 되면 하루 백 그릇도 넘게 파는 것 같아요. 하루 종일 죽 나오길 기다리는 손님들이 줄을 서요. 좋은 재료를 쓰니 단골들도 많고 부산 대구에서 일부러 오시는 분들도 많아요.”
매일 건강한 죽을 쑤어서인지 팥죽으로 손님을 맞는 김명희 씨의 얼굴이 어린아이처럼 해맑다. 장날 점심을 향해가는 시각, 입김을 불며 죽집으로 들어서는 손님들의 종종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었다.
최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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