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청마(靑馬)의 해, 말의 고장 영천 이야기②
|
2014년 01월 07일(화) 11:15 [영천시민신문]
|
|
|
2014년은 갑오년(甲午年)으로 '청마(靑馬)'의 해이다. '청마(靑馬)'는 갑(甲)이 청색을 의미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말들 중에서도 청마가 가장 진취적이며 또 행운을 상징한다고 한다. 말(馬), 그것도 청마(靑馬)의 해인 2014년은 2016년 경마장 개장을 앞둔 말의 고장 영천의 성장과 발전을 상징하는 반가운 해(年)이다. 말은 날쌔고 용감한 동물이다. 전쟁 때는 훌륭한 병기이며 평시에는 농사일을 돕는다. 오랜 역사를 지나오면서 사람과 아주 친숙한 관계를 유지하는 동물이며 매우 신성한 동물로 상징되어 왔다. 말띠의 해를 맞아 눈부시게 비상하는 말의 고장 영천을 꿈꾸며 말과 관련된 지역의 사연들을 찾아가 보았다. 과천, 제주, 김해에 이어 제4 경마장이 들어서는 우리 영천은 말과의 인연이 무척이나 깊은 고장이다. 영천의 역사속에는 말과 연관되는 여러 가지 유적과 이야기가 전한다. 영천의 역사속에서 영천의 말 이야기를 찾아본다.
조선시대 지방역원의 중심지 장수역
| 
| | | ↑↑ 관가샘 | | ⓒ 영천시민뉴스 | | 조선시대 신녕면에는 장수역(長水驛)이 있었는데 이곳은 지방역원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장수역을 중심으로 영천 청통역, 청경역, 경주 아화역, 모량역, 사리역, 구어역, 의곡역, 인비역, 경역, 조(朝)역, 하양 화양역, 자인 산역역, 울산 부평역, 의흥 우곡역 등의 예속역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10여 마리의 역마가 있었는데 큰말(大馬) 2필, 중말(中馬) 2필, 짐 싣는 말이 10필 정도였다고 하며 역마의 유지와 관리에 필요한 토지(마위전)도 있었다. 또 역리(驛吏)가 20명이고 이들이 남자 종 170명, 여자 종 86명을 거느렸다고 한다.
신녕 시내에도 말죽거리(주막거리)가 있었는데 일본으로 가던 조선통신사도 안동과 의성을 거쳐 이곳 장수역을 지나갔으며 조선통신사를 위해 경상감사가 전별연을 베풀었던 곳이기도 하다.
역에서의 이별을 노래한 포은 정몽주 선생의 시도 유명한데 다음과 같다.
흰 구름은 푸른 산에 있는데 / 나그네는 고향을 떠나네 / 해 저물어 눈과 서리 찬데 / 어찌하여 먼 길을 가는가 / 역 정자에서 밤중에 일어나니 / 닭 우는 소리 크게 들리네 / 내일 아침 앞길 떠나면 / 유연한 회포 금치 못하리 / 친구들은 이미 날로 멀어지니 / 머리를 돌리면 눈물만 흐르네.
조선통신사 부사였던 김세렴의 ‘해사록’에도 영천 신녕 장수도찰방(長水道察訪, 현재의 신녕)에서 조선통신사 일행에 필요한 마필을 조달했다는 문헌의 기록이 남아있다.
당시 장수역의 관가(官家)샘이었던 우물을 2007년 주민들의 구전을 토대로 복원하기도 했다.
조선통신사를 위한 전별연, 마상재
| 
| | | ↑↑ 마상재 | | ⓒ 영천시민뉴스 | | 조선통신사는 1428년부터 1811년까지 조선의 왕이 일본의 실질적인 최고통치자인 막부장군에게 보낸 외교사절을 말한다. 조선통신사는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파견되었지만, 일반적으로 임진왜란 이후 행해진 12차례의 사신행차를 일컫는다. 그것은 후기의 조선통신사가 전란의 상처를 딛고 행해진 외교사행인 데다, 이를 통해 양국의 다양한 문화가 교류하는 공식 통로 역할도 수행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국내노정은 약 20일이며 거리로는 440km인 대장정 이지만 전체노정의 5분의1 정도 밖에 안된다. 부산을 떠나 나머지 길을 또 떠나야 하는 엄청난 기간의 여정이었다.
전별연은 일본으로 향하는 조선통신사를 위로하는 잔치로 영천에서는 경상도 관찰사가 베풀었는데 국가차원의 큰 규모로 시행되었다고 한다. 조양각에서 악공의 연주와 기생의 가무가 어우러진 전별연이, 그 앞 남천변에서는 마상재가 함께 베풀어져 관람객과 장사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지역축제의 장이 되었다.
마상재란 말 위에서 하는 재주를 말한다. 달리는 말 위에서 총쏘기, 달리는 말의 좌우로 등을 넘기, 말 위에서 누워 달리기, 말 다리 밑으로 몸을 감추기 등의 여덟가지 무예가 있다.
‘증정교린지( 正交隣志)’의 신행각년례(信行各年例)에는 “양마인, 잡예기능, 그림을 잘 그리는 자, 글씨를 잘 쓰는자, 이름난 의원, 말타기 재주가 있는 자(馬才人)들을 거느리고 온다”고 기록되어 있다. 통신사가 일본에 갈 때에 꼭 데리고 갈 전문가로 화원, 사자관, 의원, 마상재를 꼽는데 마상재가 포함된 것은 1636년 제1차 통신사행부터라고 한다.
잘가는 말도 영천장, 말죽거리
영천은 사통팔달의 교통요충지로 다른 지역에서 온 상인들이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팔기 위해 몰려들었다. 옛말에 '잘 가는 말도 영천장, 못 가는 말도 영천장'이란 말이 있는데 이것은 인근 지역에서 아무리 빨리 가도 영천시장이 아니면 갈 곳이 없다는 뜻이라고 한다.
영천은 산으로 둘러싸여 시티재, 갑령재, 오재, 노귀재 등 높은 재들이 많은데 이 재를 넘어 영천시장에 온 상인들이 영천에서 하루를 쉬면서 말에게 먹이(말죽)를 주고 편자를 교체했던 곳이 말죽거리 이다.
이곳엔 신라 때부터 도성인 경주로 들어가며 말을 갈아타는 역마가 있었고 인근에 말을 키우는 목마장이 운영됐다고도 전한다. 특히 경주로 들어가는 길목인 금호강변에서 도성 입성을 기다리는 말들이 줄지어 있었다고 한다. 또 말을 타고 도성으로 입성하면 부자로 취급받아 도적들의 표적이 될 수 있으므로 강변에 말을 매어두고 경주로 들어갔기 때문에 말이 아주 많은 지역으로 알려졌다는 설도 있다.
일제 강점기에 영천에는 곡물이 많이 나고 인심도 후했는데 그래서 ‘영천에 가면 되(升)와 말(斗) 좋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으며 이말이 변해 ‘영천 대말’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어은리 유물 마형대구
| 
| | | ↑↑ 마형호형대구 | | ⓒ 영천시민뉴스 | | 금호 어은리 입구 금호강 남안의 구릉 경사면에 위치한 고분유적에서 다량의 청동기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출토유물 및 발견상태로 볼 때 토광묘 계통으로 기원전 1세기경으로 추정된다. 이중 말의 형상을 한 마형대구가 함께 출토되었다.
마형대구(馬形帶鉤)는 길이 15.6㎝로 말을 측면에서 본 모습을 앞 반면만 나타내고 뒷면에는 둥근 돌기형의 꼭지를 만들었다. 가슴 앞으로 긴 돌기가 있는데, 그 선단은 갈고리처럼 생겼으며, 허리띠의 다른 쪽 끝에 붙인 타원형의 고리에 걸 수 있게 하였다. 몸체는 가슴과 배에 띠 모양의 무늬를 새겼으며, 머리에는 고삐를 나타내고 있다.
말 모양의 장식품은 길이 5.4㎝로 2개로 분리된 거푸집(鎔范)을 사용하여 주조한 것으로 가슴에서부터 뚫린 구멍이 있어서 매달 수 있게 만들었다.
-위 기사는 시민편집자문위원회에서 다양한 분야에 대한 취재요청에 따라 취재하였습니다
|
|
|
최은하 기자 “시민신문을 보면 영천이 보입니다” - Copyrights ⓒ영천시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
영천시민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영천시민신문 |
|
|
|
|
|
|
실시간
많이본
뉴스
|
|
|
|
|
|
|
|
최신뉴스
|
|
|
[득표현황] |
김병삼 영천시장 후보 ,‘당선’… 6000여 표 차로‘압 |
영천시, 투표율 64.7% |
지방선거 투표용지 6종, 시민의 선택은… |
6·3 지방선거, 민주당 시의원·지역구 비례 총 ‘4석 |
영천시 사전투표율 23.25%, 도내 평균보다 0.83% |
[주간포토] |
신성일 배우와 딤프(DIMF)의 인연, ‘딤프린지’ 특별 |
정연복 이사장, ‘2026년 새마을금고 '대상' 수상 |
신협, ‘여성행복스쿨’역량 강화를 위해 실시 |
시, 마늘융복합산업 발전 위한 운영위원회 개최 |
영천시, 소방서·경찰서와 2026년 정례회의 개최 |
권병균 역세권개발추진단장, 토질·기초기술사 시험 ‘합격’ |
영천향교, 2026년 ‘이상기후변화 대응 아카데미’ 개강 |
대창면청년회 공식 출범…지역 발전 이끌‘첫걸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