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사건사고 경제 복지/봉사 인물 동영상 종합 돌발영상 정치 경제 행정 지방의회 종합 문화 여성 교육 학교소식 인물 종합 취재수첩 기획기사 사진기사 지역소식 동정 방문 행사 보도자료 종달새 칼럼 독자투고 의학상식 시민기자란 영천인 출향인사
최종편집:2026-04-23 12:43:09
전체기사
커뮤니티
공지사항
PDF게시판
뉴스 > 문화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금호읍 창주서원 체계적 정비 시급… 백학서원 내년부터 복구할 예정
2015년 12월 08일(화) 22:46 [영천시민신문]
 

ⓒ 영천시민뉴스
영천향토사연구회(회장 박세호)의 네번째 서원 답사는 영천시 과전동의 창대서원, 대창면의 도잠서원, 금호읍의 창주서원, 화남면의 회계서원과 백학서원, 북안면의 도계서원을 경유하는 답사였다. 지역별로 묶어 진행하던 답사였으나 미처 다녀오지 못한 서원을 포함하였으므로 사실 영천의 전 지역을 순회한 셈이었다. 기온이 내려가고 바람마저 상당했던 날로 바쁘고 고생스러운 일정이었으나 서원답사를 마무리했다는 뿌듯한 만족감이 고생스러움을 상쇄시켜 주었다. 이번 답사는 경북문화해설사인 전민욱 해설사의 안내로 진행되었으며 오후 4시가 다되서야 답사를 마무할 수 있었다.

영천향토사연구회, 서원답사
창대서원·도잠서원·창주서원
회계서원·백학서원·도계서원

◆ 창대서원

ⓒ 영천시민뉴스
경찰서장 관사와 호연정 사이, 금호강변에서 바라다 보이는 창대서원은 영천에 사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눈길을 돌렸을법한 곳이다. 영천교를 지나면 정면으로 눈에 띠는 곳이지만 관심이 많지 않은 시민들은 그곳이 서원인지조차 모르는 이들도 있다.
금호강변에 차를 대면 계단을 올라야 하고 중앙사거리쪽 큰길에서 들어가는 길은 너무 좁아 승용차 두대가 지나가기 어려운 길이었다. 서원에는 정재식, 정무길 두 분의 문중 유사께서 기다리고 있다가 문을 개방해 주었다. 문중회장은 정종환 씨.
창대서원은 임진왜란때 의병을 모집하여 신녕, 하양, 추평 전투를 비롯하여 영천 복성에 큰 공적을 세운 정대임 장군의 충절을 기리고 위패를 봉안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1697년(숙종 23) 후손과 향내 유림들이 영천시 녹전동에 창대서원을 건립했으나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훼철되고 1955년에 현재의 위치인 과전동에 복원했다. 그런데 이것도 2004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다시 복원한 것이다. 현 서원의 터는 임진왜란 영천복성 전투때 영천성의 남문으로 창대공이 왜장 법화를 목 벤 곳 이기도 하다.
창대공 정대임 선생과 남창공 정제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명고공 정간 선생의 위패도 추가하여 향사를 올리고 있다. 묘우(사당)에는 ‘충현사’라는 현판이 걸려있으며 묘우의 문짝은 꽃문살로 237년 전인 1777년 창대서원 신축당시의 것이라고 한다. 소박한 꽃문양이 무척 아름다우며 고풍스러운 보였다. 강당은 향의당이고 강당 안에는 상량문과 충의문, 동재, 장서고, 포사 및 유허비가 있다.
정대임은 영일정씨이고 이름은 중경, 호는 창대이다. 목판본인 5권 1책의 ‘창대실기’가 있다.

◆ 도잠서원

ⓒ 영천시민뉴스
도잠서원은 대창과 금호 사이의 길에서 영지사 가는 방향으로 꺾어 20여분을 더 들어간 후 용호리 마을에서 양지길을 따라 더 들어가면 만나는 도화제라는 저수지 옆에 있다.
도잠 서원은 1612년(광해군 4) 창건했는데 창건 당시에는 지봉 서원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1678년(숙종 4) 현재의 장소인 용호리로 옮겼는데 이때 사액서원이 되었다. 이후 1868년(고종 5)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철폐되었다가 1914년 복원하였고, 1981년 보수했다고 한다. 3칸의 묘우, 5칸의 강당, 1칸의 망회정(정자), 신도비, 비각, 사주문, 포사 등이 있다. 묘우에는 조호익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강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방으로 되어 있는데, 문중의 행사 회합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망회정은 조호익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정자인데 사방 1칸의 방으로 우리 눈으로 보기엔 아주 좁아 보였다. 회원들이 정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신도비는 1642년(인조 20)에 건립되었다고 하고 포사는 향례 때 제수를 장만하여 두고 거처하는 곳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매년 3월 중정과 9월 중정에 향사를 낸다고 한다. 현재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0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건물은 문화재 건조물 제109호로 고시되어 있다. 유물로는‘지산집’ 및 ‘가례고증’, ‘대학동자문답집’ 등의 목판이 보존되어 있다.
조호익은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연구한 학자이다. 경상도도사 최황이 부임하여 조호익을 군적검독관으로 임명했으나 상을 당해 사퇴하자 명령을 거부하는 토호라고하며 평안도 강동으로 유배를 보냈다. 박순홍 회원은 “지산선생을 생각하면 선생의 쓸쓸한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유배에서 풀렸으며 금오랑으로 임명되었고 중화, 상원, 평양 등지에서 전공을 세웠다고 한다.

◆ 창주서원
금호읍 삼호1리에 있는 창주서원은 1727년(영조 3)에 조상치의 학덕과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창수사를 창건하였는데 이후 창주서원으로 사액되었으며, 순조 23년에 조한보, 조한영, 조선장을 추가배향한 서원이다. 흥선대원군의 서원훼철령으로 훼철되었으나 1913년 지방 유림이 뜻을 모아 복원했다.
창주서원은 잘 알려지지 않아 금호가 고향인 김희대 회원도 전민욱 해설사도 위치를 잘 알지 못해 이리저리 찾아 헤매기도 했다. 헤매인 끝에 서원의 지붕을 찾았지만 들어가는 입구를 발견하지 못해 서원 주위를 한참 돌았는데 그 이유는 서원의 입구에 민가가 지어져 문이 눈에 잘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원의 입구에는 농가의 농작물이 걸려있기도 했고 서원 마루에도 고추가 말려져 있어 좀더 체계적인 보존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원은 3칸 사당과 5칸의 강당, 삼문, 포사, 신도비, 비각 등이 있다. 또 조상치의 ‘시호교지’와 고문헌이 전해진다고 한다.
창주서원에 배향된 조상치는(생몰년 미상)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창녕조씨이며 이름은 자경이다. 호는 정재·단고 등을 썼다. 길재의 문인으로 세종때 증광문과에 을과장원으로 급제하여 사재감주부 벼슬을 했고 집현전에서 근무했으며 세종·문종·단종 3대를 섬기며 성삼문·박팽년과 함께 총애를 받았다.
단종때 집현전부제학에 발탁되었으며 세조가 왕위를 찬탈한 뒤에 예조참판에 임명했으나 사직하고 은거하면서 후학을 양성했다고 한다.

◆ 회계서원

ⓒ 영천시민뉴스
회계서원은 화남면 삼창리 마을 뒤쪽 숲 뒤 바깥 못의 우측에 있는 서원으로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임계 조경온을 배향하고 있다.
회계서원에서는 마을에 사는 문중 유사 어른이 나와 서원과 묘우의 문을 열어주고 문중과 향제에 대한 설명을 들려주었다. 회계서원에서는 3월 초청에 향제를 지낸며 향제를 지낼때마다 문중 유림들이 50명 정도 모인다고 한다. 김희대 회원이 묘우에 들어가 향을 피우고 나머지 회원은 묘우의 입구에서 배를 하는 예를 갖추기도 했다.
원래는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 신녕면 치산리의 구천서원에 권응수장군과 함께 제향했지만 문무가 다르다는 이유로 순조 32년에 사림들이 뜻을 모아 화남면 귀호리에 창건하고 위패를 옮겨 봉안했다.
1871년(고종 8)에 훼철된 후 단을 만들어 유지해 오다가 1994년 현 장소인 화남면 삼창리 마을로 옮겨 사당인 효절사와 강당인 돈륜당, 동재인 무본재, 서재인 추원재를 중건하였다고 한다.
회계 서원은 앞쪽에 강당을 두고, 우측 뒤편에 사당을 둔 전형적인 전학후묘 방식을 취하고 있다. 조경온(1548~1592)은 이름이 여울, 호가 임계이며 창녕조씨이다.
임진왜란 때 왜적들이 남의 분묘를 발굴하는 것을 보고 가솔들을 산중으로 피난 보내고 자신은 재사에서 묘를 지켰다. 왜적이 와서 창. 검으로서 위협했지만 의관을 정재하고 조금도 굴복하지 않았고 그 모습을 본 왜적이 감동하여 그냥 돌아갔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왜병이 다시 와서 위협하다가 칼에 목을 찔려 피를 흘리며 “내가 나라를 위해 전쟁터에 나가지 못한 것이 한스럽지만 선조들의 묘 앞에서 죽는 것도 영광이다”라고 말하고 그날 절명했다고 한다. 선조때 효를 다한 행적을 높여 공조참의 벼슬이 내려졌다.

◆ 백학서원
백학서원은 현재 영천시 화남면 안천리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는 백학산의 양강소 위에 세워졌지만 나중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백학서원은 1555년(명종 10년) 당시 신녕 현감이었던 금계 황준량이 지역 유림들과 더불어 화남면 백학산의 양강소 위에 건립했다.
이후 임진왜란때 소실된 것을 1612년(광해군 4년)에 중건했고 1658년(효종 9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겼으며 퇴계 이황 선생을 제향하고 황준량 선생을 배향했다. 1868년(고종 5년)에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00년에 지역민들이 뜻을 모아 다시 서당으로 복건했다.
1921년에는 창녕조씨 문중이 중심이 되고 지역의 유지들이 힘을 합해 신학문 교육기관인 백학학원을 설립하여 민족의식과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민족교육을 실시함으로써 많은 항일독립투사를 양성했다. 백학학원이 배출한 독립운동가로는 민족적 신념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 죽음으로 일제에 저항한 민족적 저항시인 이육사를 비롯하여 조재만, 안병철, 이원대, 이진영 등이 있다.
현재는 1900년대에 복건된 건물의 기와와 담벽이 심하게 훼손되었으며 그동안 복원이 시급하다는 여론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다행히 2014년 경주보훈지청에서 현충시설로 지정 2016년 부터 복구 사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 도계서원

ⓒ 영천시민뉴스
도계서원은 영천출신으로 조선조 선조시대 가사문학의 선구자이며 효자로, 임진왜란 때는 수군으로 종군하여 많은 공적을 남기고, 해안 지방의 만호까지 역임한 박인로를 향사하기 위해 1707년(숙종 33)년 창건한 서원이다.
사당, 강당서원은 건립 당시보다 규모가 줄어들고 위치마저 옮겨졌다는 말이 있다. 현재 노계 선생의 묘소가 가까운 앞 산에 있다. 서원 입구 왼쪽에는 노계가 비석이 있고 앞쪽에 작은 연못이 자리 잡고 있다.
박인로(1561년~1642년)는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임진왜란 때는 무인으로도 활약했다. 밀양박씨이며 이름은 덕옹, 호는 노계 또는 무하옹이다.
박인로는 전반생이 임진왜란에 종군한 무인으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졌다고 한다면, 후반생은 독서와 수행으로 초연한 선비요, 문인 가객으로서의 면모가 지배적이었다. 비록 후반생부터 문인활동을 했지만, 그의 작품세계는 매우 풍요로워서 정철에 버금가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들은 3권 2책으로 이루어진 ‘노계집’과 필사본 등에 실려 있다. 그 밖에도 많은 시가들이 있었으나 대부분 소실되었다.
최은하 기자  
“시민신문을 보면 영천이 보입니다”
- Copyrights ⓒ영천시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영천시민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영천시민신문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천연기념물 야생동물, 치료·재활 후 자연으로 돌아가
[화보]벚꽃 만개한 영천, 영천댐 순환도로 구석구석 사람들로
이정훈 영천시장 예비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 개최
더 새롭게 아름답게 찾아온‘2026 문경찻사발축제’
최기문 영천시장 예비후보, 망정 우로지서 출마 선언
시, ‘서영천 하이패스IC’ 개통 전 막바지 점검
제16회 영천복사꽃 전국사진촬영대회 개최
영천시의회, 2025회계연도 결산검사위원 위촉
시장학회 정기이사회 개최
[1면화보]식목일 행사, 안동 산불현장에서 열려

최신뉴스

[1면 화보]재향군인회, 28주년 영호남 친선교류행사  
시, ‘소아 야간·휴일 진료기관 육성사업’ 공모 선정  
시, 무인민원발급기 수수료 이달 15일부터 ‘전면 무료’  
시, 캐나다 농식품 수출 확대  
추경, 20~60만원 지역화폐로 지급… 이르면 4월 말  
시, 경북도민체육대회… 골프 단체전·육상 박재우 선수 1  
이철우 도지사 예비후보, 영천 방문… 맞춤형 발전 비전  
영천별아마늘 홍보·판매전 개최, 대구서 판로 넓힌다  
시, 실제 사례로 배우는 반부패·청렴교육 실시  
수영 김건우 선수(중앙초)등 847명… 전국소년체전 출전  
영천시, 국군사관대학교 유치 범시민 추진위원회 선포식 개  
경북교육청,‘2026학년도 군 특성화고 합동 발대식 개최  
시, 담배 규제사항 합동 점검·단속 실시  
시, 공공데이터·AI 활용 창업 경진대회 개최  
시, 자살예방·정신건강 증진 위한 업무협약 체결  


회사소개 - 연혁 - 임직원소개 - 윤리실천요강 - 윤리강령 - 편집규약 - 제휴문의 - 광고문의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찾아오시는 길 - 모바일
 상호: 영천시민신문 / 사업자등록번호: 505-19-58881 / 주소: 경북 영천시 조양공원길 24번지(창구동 26-9) / 등록일 : 2010년 9월 6일 / 발행인.편집인: 지송식
mail: smtime12@naver.com / Tel: 054-333-1245 / Fax : 054-333-1244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아0014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지송식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