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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소재 영천학사 출신 새내기 사회인 연재글 ①
2016년 04월 05일(화) 20:29 [영천시민신문]
 
인재양성의 요람으로 자리잡은 영천학사가 개관한지 9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역출신 학생들이 수도권 소재 대학에 입학하면서 영천학사와 인연을 맺었고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새내기 사회인이 된 이들의 사고를 담은 글을 매월 1회씩 연재한다.

흙수저로 밥 먹기

ⓒ 영천시민뉴스
지난해부턴가 팍팍한 우리 삶을 자조하면서 유행처럼 번진 말이 있습니다. ‘금수저와 흙수저’로 표현되는 수저계급론입니다. 부모의 재산 정도에 따라 자식의 계급이 나뉜다는 의미입니다. 자산 20억원 또는 가구 연 수입 2억원 이상일 경우 ‘금수저’, 자산 5000만원 미만 또는 가구 연수입 2000만원 미만 가구 출신은 ‘흙수저’라 불립니다.
수저계급론이라는 단어는 21C 대한민국 사회에서 생겨났지만, 그 말이 지니고 있는 의미는 오래전부터 존재했습니다. “왕후장상이 어찌 원래부터 씨가 있겠는가?” 가난한 농민이었던 진승과 오광이 중국 최초로 농민 반란을 일으키면서 한 말입니다. 고려 시대 최충헌의 개인 노비였던 만적도 천민들을 모아 봉기를 할 때 왕후장상의 씨를 거론했습니다. 더 먼 미래로 가보자면 고대 그리스의 철학가 플라톤의 말에서도 수저계급론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사람은 금, 은, 동, 그리고 철의 성분을 품고 태어난다고 주장했습니다.
수저계급론이 언제 생긴 말이든 간에 어쨌든 ‘수저계급론’은 이제 ‘헬조선’이라 말과 함께 대한민국 사회를 관통하는 말이 되어버렸습니다. 썩 기분이 좋은 단어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을 애써 부정하면 스트레스만 더 커질 뿐입니다. 문제는 이 다음부터입니다. 흙수저로 태어날지 금수저로 태어날지는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비록 흙수저 일지라도 어떤 밥을 먹을지는 결정할 수 있습니다. 어떤 수저가 아니라 그 수저로 어떤 밥을 먹는가가 중요합니다.
저는 중앙초등학교와 영동중학교, 영동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33㎡(10평) 남짓한 집에서 할머니와 동생, 저 이렇게 3명이서 살았습니다. 과외는 커녕 학원도 제대로 못 다녔습니다. 다행히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학창시절 저를 응원해주는 학교 선생님들이 큰 힘이 됐습니다. 영천학사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고려대에 입학하게 돼서 서울 유학 생활을 하던 촌놈이 아는 것도 없고, 돈도 없을 때 영천학사는 생활의 버팀목이었습니다. 지금 제가 KBS에서 기자 생활을 하고 있는 것도 그런 많은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습니다.
요즘 전 사회부에서 일을 하면서 경찰서와 지검, 지법을 출입하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종로경찰서로 출근하고, 경찰, 검사들과 부대끼는 게 일상입니다. 대한민국 사회를 열심히 지탱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등을 대화하면서 기사 거리를 찾습니다. 9시 뉴스 기사를 쓸 거리가 생기면 하루 종일 카메라 기자와 돌아다니면서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고, 리포트 제작을 합니다. 내일 당장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지만 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취재를 한다는 건 꽤 즐겁습니다.
하지만 전 더 나은 삶을 원합니다. 더 나은 삶이라는 의미가 꼭 ‘성공’이나 ‘출세’를 뜻하진 않습니다. 제가 노력하고 이룰 수 있는 삶의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행복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사랑’이나 ‘우정’은 그 안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걸 꼽자면 제 자신을 좀 더 풍성하게 만드는 ‘지성’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고전소설을 비롯한 책, 영화, 여행, 음악 등을 즐기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영화는 다른 사람의 삶과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가장 흥미로운 매개체입니다. 독서는 어느 정도의 의지와 집중력을 요구하는 반면 영화는 ‘재미’로 잘 포장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도 독서만큼이나 시야를 넓혀줍니다. 인터스텔라를 보면서 우주도 상상하고, 해리포터를 보면서 마법사들의 삶도 그려봅니다. 오랫동안 느끼고 있었지만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영화를 통해서 알기도 하죠.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슬픈 노래와 즐거운 노래, 차분한 노래 등 모든 노래는 그때그때 감정과 상황에 맞게 우리를 항상 위로해줍니다.
여행은 ‘더 나은 삶’을 위해 필수적입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자연은 우리의 분수를 깨닫게 해준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 때문에 우리가 왜소해지는 느낌을 받는 건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니지만, 우리보다 엄청나게 거대한 무언가에 의해 우리의 본질적인 무상함을 알게 되는 건 전혀 모욕적인 일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정신을 더욱 풍성하고 여유롭게 만들어준다는 겁니다. 이 세상에 자신의 삶만 중요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건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여행은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왕이면 흙수저가 아니라 금수저로 태어났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가끔 들 때가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제 자신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예술과 여행을 가까이 하는 게 행복합니다. 전 비록 흙수저이지만 제가 떠먹는 밥은 매우 맛있습니다. 수저는 제 마음대로 못 바꾸지만 밥은 제 입맛대로 만들어서 먹을 수 있습니다.
영천시민신문 기자  smtime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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