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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난으로 어려울 때 포은집 간행… 1607년 가장 먼저일 듯
4종 자료 용화사에 소장
2016년 05월 03일(화) 12:12 [영천시민신문]
 

↑↑ 용화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포은집의 표지와 내지의 모습.
ⓒ 영천시민뉴스
영천역사문화박물관(용화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수많은 영천자료 중 자랑할 만한 명품 고서로 영천본 포은선생문집을 소개했다. 이 책은 임진왜란(1592~1598)이 끝나고 영천지역의 전쟁상처가 치유되기도 전에 영천군민이 힘을 모아 1607년 영천에서 4권 2책으로 간행된 것이라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박물관 유물관리 윤은숙 실장은 “조선시대 포은선생문집의 간행 시기와 경향을 조사해 보면 특이한 점을 찾아 볼 수 있는데, 나라에 어려운 일이나 정변이 일어난 뒤 민심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여론을 한 곳으로 모으고자 포은선생의 위폐가 모셔진 서원이나 지역을 중심으로 포은문집이나 그와 관련한 책들이 발간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이것은 포은선생의 충의정신을 통해 사회적 통합과 어려움을 극복하는 여론을 형성하는데 포은문집이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그 이유는 1600년 초기 포은선생문집의 간행이 중앙에서 파견된 지방관료 중심이라는 것과 책을 만들기 위해서 소요되는 많은 비용을 관이 중심이 되어 해결한 것으로 보아 중앙정부의 허락없이는 불가능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포은선생이 보여준 충의가 국가안정기 보다는 혼란기 이후에 조선왕실의 안정과 통치 강화에 적절히 이용될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예로 임란이 끝나고 9년 뒤 남쪽에서는 1607년 영천에서 영천군수 황여일(黃如一)을 중심으로 문집판각이 시작되었으며, 바로 1년 뒤 북쪽에는 1608년 황해도 황주병영에서 포은선생의 7대손 정응성(鄭應聖)이 황해도병마수군절도사로 부임하여 병영의 물력을 사용하여 그해에 ‘포은시고’ 2권 1책으로 간행했다. 또한 1659년 봉화에서도 현감 정운익(鄭雲翼·포은9대손)이 간행작업에 착수하였으며 1677년 영천군수 이만봉(李萬封)이 정사중간본문집을 간행했다. 이 시기에 영천본·황주병영본·봉화본의 특징은 관(官)이 중심이면서 간행자 개인의 의도도 깊이 반영되었다.
영천본 포은집이 간행될 무렵인 1607년경에는 영천복성 승리로 인해 많은 영천 지역민의 신분상승과 신분의 변화가 이루어지면서 개인적 관심들이 성리학 교육의 모태가 되는 향교와 서원 등으로 옮겨지게 되고 자신들의 유교적 배경을 가진 교육기관 집중건립을 시도하게 되면서 영천지역 사회의 변혁기를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에 포은선생문집 간행은 지역사회 유림과 오천 정씨 문중의 문인들에게 많은 이슈를 만들어내었을 것으로 예상해 볼 수 있다.
그것은 포은선생이 충의의 표상으로 포은집 발간과정에서 누구든 자신의 이름 세 글자를 적어 넣기만 한다면 집안대대로 포은 선생과 같이 충신의 집안이 될 수 있다는 바람이 담겼던 것이다.
이러한 많은 관심과 개인적인 요구가 투영된 포은집의 일차적인 승리는 영천군수 황여일과 생원 정거의 승리로 끝이 났다.
영천군수 황여일은 ‘비각중수기(碑閣重修記)’를 포은집 안에 수록하였고, 정거는 포은선생의 후손으로 영천고택에 거주하는 인물로 연보교이 말미에 기록되어져 있으나 오천 정씨의 힘을 모으는 역할과 포은문집의 간행에 많은 노역을 했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러한 인과관계로 인해 ‘비각영발(碑閣詠跋)’ 문집에 글을 수록하는 쾌거를 이루어 포은문집을 간행되었다.
하지만 영천의 유림들이 자신들이 이 사업에 완전히 배제된 상황을 보고 경주부윤 오운에게 영천군수 황여일의 ‘비각중수기’를 삭제하고 싶은 자문을 구한다. 그러나 오운은 삭제보다는 포은문집에 두되 제목과 내용을 수정하여 책의 끝에 두도록 생원 정거의 ‘비각영발’은 어른들 발문 뒤로 옮겨서 구성할 것을 조언하고 있다.
1617년 이후로 영천유림들은 결국 영천군수 황여일의 ‘비각중수기’를 포은문집에서 제거해서 간행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2차전의 싸움에서 완전한 승리를 잡게 된다.
위에서 보듯이 영천본 포은문집을 둘러싼 영천 유림과 영천군수 황여일, 오천정씨의 막후 실세 생원 정거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갈등과 많은 사연을 담겨진 영천에서 만들어낸 첫 번째 포은집이라는 점이 영천의 유림문화의 시대적 갈등을 담고 있다.
지봉스님은 “영천역사문화박물관에서는 포은집 연구논문 최채기의 ‘포은집의 편찬과 간해에 관한 연구’의 성균관대학교 석사논문(2005년)에 근거해 비교해본 바 영천본의 내용에 나온 황여일 군수와 생원 정거, 지역유림간의 포은집 간행을 둘러싼 삼파전 관련 내용이 위에 설명한 것처럼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영천에서 간행된 포은집으로는 1607년, 1677년, 1769년, 1866년으로 총 4차례로 영천역사문화박물관에는 이 4종의 자료를 모두 소장하고 있어 영천간행 ‘포은집’의 변화를 잘 살펴볼 수 있다.
임진왜란을 통해 포은집의 목판이 모두 불타버린 것으로 알려진 1585년 유성룡이 교정한 서애교정본(영천구본)은 실체가 없는 것으로 연구되고 있어서 영천에서 간행된 것은 1607년 것이 가장 빠른 본으로 보고 있다.

- 박순하 시민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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