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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으로 사라진 영천극장, 옛 흔적에서 의미 찾다
2016년 08월 23일(화) 09:30 [영천시민신문]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영천극장은 단성사와 함께 근대 문화유산으로서 매주 중요한 입지적 장소였다. 이는 일제강점기 당시 유수의 기사문을 통해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영천극장의 철거를 즈음하여 1930년대부터 60년대까지 영천극장에 관한 기사문을 통해 그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1934년 동아일보 최초 거론
영천극장이 1960년대 건립됐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는 틀린 내용이다. 영천극장에 관한 기록은 일제강점기인 1934년 6월의 것이 최초이며 관련 내용은 당시 동아일보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사 내용은 1934년 6월 11일 동아일보사 지국 사무소를 영천극장 앞 신축사로 이전했다는 내용으로 극장에 대한 기사는 아니지만 영천극장이 최초로 거론되었다는 점에서 최소 1934년 이전부터 영천극장이 존재했음을 알게 해주는 기사이다.
동아일보는 3일 뒤인 1934년 6월 14일에도 영천극장에 대한 기사를 실었는데 내용은 언하동에 큰 화재가 발생해 동아일보 영천지국과 영천번영회가 영천극장에서 화재민 구제활동을 개최했다는 내용이다. 기사문에 함께실린 이재민들의 당시 사진 역시 중요한 사료적 가치가 있다.
1938년 9월 25일자 동아일보에는 영천연초소매인총회가 9월 20일 영천극장에서 내빈이 다수 참석한 가운데 성대히 거행되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위 3개의 기사를 종합해 보았을때 영천극장이 적어도 1934년 이전부터 있었다는 것을 학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극장의 장소에 대한 언급이 없어 현재의 장소였는지는 학인할 바가 없다. 또 기사의 내용을 통해 극장의 용도가 공회당 역할까치 겸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54년 영천극장 개관식
이후 영천극장이 언론지상에 거론된 것은 1954년으로 세월을 훌쩍 뛰어 넘는다. 동아일보 1954년 10월 19일자 신문의 지방행사란에는 10월 8일 영천극장 개관식이 있었다는 내용이 실리는데 이때 개관한 극장이 최근까지 폐허로 남아있던 영천극장인 것으로 추측된다. 교촌동 169-6번지인 현 영천극장 자리의 건축물대장에는 1955년 477.52㎡ 규모의 건축물이 신규 등록되었는데 실제로 두 자료간에는 1년의 오차가 생기지만 1980년대 후반 과세대장을 기초로 건축물관리대장을 일괄 정리하는 과정에서 오기가 생길수 있다는 담당자의 설명을 참작했을때 1960년대가 아닌 1954년 개관설은 확실한 설득력이 있다.
1년 후에는 경향신문에서 영천극장의 소식을 싣게 되는데 1955년 4월 20일부터 22일까지 신인 남녀가수 콩쿨대회가 영천극장에서 열렸다는 내용을 ‘내고장 모임’란에 게재하고 있다.
그리고 한달 뒤에는 영천극장이 권력층의 무료입장으로 인해 경영난에 봉착했으며 지난 20일에는 칠할이 무료 입장했고 무료입장을 시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구타 사건이 발생하기까지 했다는 내용이 실려있다.
1년 뒤인 1956년 3월에는 민주당 영천군당부 임원을 2월27일 영천극장에서 선정했다는 기사가 동아일보에 게재됐다.
내용을 종합해 보았을 때 1950년대 영천극장에서는 콩쿨대회를 비롯한 기타 공연무대가 펼쳐졌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무료입장이 많았다는 내용에서 입장료 징수나 티켓 판매 등의 행위가 아직 정착되지 못한 단계였다는 것과 민주당 영천군당부 임원 선정 등의 기사에서 보여지듯 당시에도 영천극장이 지역 공회당의 역할을 여전히 수행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62년 도내 극장대표 5명 집회
1960년대 영천극장 관련 기사는 1건이 전부다. 그러나 내용은 당시 영천극장 사장이 누구였는지 또 극장가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담겨있다.
1962년 5월 9일 동아일보에서는 영천극장 사장 홍○수(51)씨가 포항극장, 안동극장, 김천극장, 경주극장 사장 및 지배인과 함께 집회에 관한 임시조치법 위반혐의로 대구지검에 송치됐다는 내용의 기사를 싣고 있다. 위 5명이 경북도내 극장대표들의 친목회 구성을 논의해 오던 중 3월 5일 대구화월호텔에서 20명의 극장대표를 만나 허가 없이 집회를 했으며 정기총회 날짜와 회비 및 회원자격 등을 토의한 후 원천과세는 영화회사측에서 내자는 결의를 했다는 내용의 보도이다. 위 내용을 통해 당시 영천극장 대표가 51세의 홍○수 씨였다는 것과 당시 영화사들이 협회를 구성해 극장의 권익을 보호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 영화사에 기록될 영천극장
1920년대와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신문지상에 실린 기사문을 보았을때 영천극장은 적어도 1934년 이전부터 영천에 있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근대 영화관을 대표하는 단성사가 1907년에 개관했고 1912년 우미관, 1922년 조선극장이 개관해 일제시대 한국을 대표하는 3대 영화관이 되었는데 영천극장은 1922년 조선극장과 겨우 12년 차를 두고 개관된 극장으로 그 의미가 남다르다 할 수 있다.
또 국제영화제가 개최되는 부산이 영화의 고장으로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던 역사적인 근간으로 1930년 개관한 소화관과 1934년 개관한 부산극장을 꼽고 있다. 부산극장은 영천극장 관련 기사가 처음 났던 1934년 개관한 극장으로 영천극장과 같은 시기이거나 영천극장보다 늦게 개관된 극장이다. 이는 영천극장이 한국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근대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동부동의 한 시민은 “건물은 낡아 그 수명을 다 했지만 영천극장의 역사는 오래 기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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