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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영천아리랑비 세우고 서적 가사집 후세에 전해야
3회: 민요의 고장 전남 진도 아리랑 타령
2016년 09월 12일(월) 18:34 [영천시민신문]
 
글 싣는 순서
1회: 영천아리랑 역사의 의미 재조명
2회: 인류무형유산 영천아리랑의 현주소
3회: 민요의 고장 전남 진도 아리랑 타령
4회: 아리랑의 원류 정선아리랑 배우다
5회: 중국서 듣는 디아스포라 영천아리랑
6회: 영천아리랑과 함께 두만강 건넌 사람들
7회: 영천아리랑, 전승·발전을 위한 제언


↑↑ 진도 아리랑축제 기간 중 남도민요경창대회가 열리는 장면.
ⓒ 영천시민뉴스
대한민국 3대 아리랑 중의 하나인 진도아리랑을 듣고 배우기 위해 전라남도 진도 지역을 방문했다. 영천에서 진도까지 378㎞에 달하는 거리였고 장장 5시간을 운전해 가야만 했다. 영천아리랑의 전승과 발전방향 모색을 위해 나선 진도 여행. 그곳에서 진도아리랑을 위해 평생을 헌신해 온 진도아리랑보존위원회 박병훈(81) 회장을 만났고 그의 친절한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 민요의 고장 진도 아리랑을 찾아가다
진도아리랑의 안내를 자처한 박병훈 회장은 팽목항과 진도 신비의 바닷길을 거쳐 진도아리랑마을관광지, 아리랑체험관, 국립남도국악원, 진도아리랑비 등 진도의 명소와 진도 아리랑을 함께 보여주며 진도아리랑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박 회장은 영천아리랑 계승을 위한 조언을 시작으로 진도아리랑 순례를 시작했다.
“영천아리랑을 제대로 전승하려면 실제적인 흔적을 만들어야 합니다. 영천 아리랑비를 세우고 영천 아리랑에 관한 역사를 담은 서적 및 가사집을 발간하는 등 실제적인 흔적이 만들어져야 후세에 전해지고 영천아리랑의 선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진도 아리랑은 가사집을 만드는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아리랑은 여러 사람이 부르게 되면서 가사의 변용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 가사를 수집해 책자로 발간하여 보관하는 것이 중요하죠. 이러한 일들을 전문 용역이나 학자들에게 맡기지 말고 지역민들이 직접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도아리랑을 오랜세월 이끌어 온 박 회장이 영천아리랑 관계자에게 보내는 심지깊은 전언이었다. 이어 진도아리랑 가사가 어떤지 어떻게 수집되었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진도 아리랑은 그때그때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어요. 섬이었던 진도가 진도대교로 인해 육지가 되었을 때는 ‘육지가 되었네 육지가 되었네 우리 진도가 육지가 되었네 진도대교는 연육교라 섬 큰애기 소리는 하드나 마소, 한양 천리길 멀다고 해도 하루에 갔다가 올수가 있네’ 라는 가사가 생겨났어요. 또 우리 진도가 민속예술문화특구가 되고 강강술래와 진도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가 된 후에는 ‘보배섬 진도가 문화특구가 되고 진도 아리랑 강강술래 세계유산이 되었네’라는 가사로 진도아리랑을 불렀어요. 이렇게 아리랑은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며 가사가 새로 쓰여집니다. 이러한 진도아리랑의 가사가 770가사가 수집됐어요. 이것을 책으로 출판해 4차례 증보판을 펴냈습니다.”

◇ 전국 최초로 결성된 진도 아리랑보존위원회
“지금부터 31년전인 1985년에 진도아리랑 보존회를 처음으로 조직했어요. 진도아리랑 보존회가 전국에서 가장 먼저 조직된 아리랑 보존단체입니다. 진도아리랑 보존회를 결성한 후 다음 사업으로 진도아리랑 가사집을 발간했어요. 그때는 아리랑을 우는 소리나 잡소리로 생각했고 사실 국악인들과 일반인들이 부르지 않는 천대받던 음악이었어요. 그러다 1967년대 동경올림픽에서 남북한 단가로 아리랑이 채택 되면서 아리랑이 중요하게 여겨졌고 그때부터 아리랑이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죠. ”
이렇게 박 회장의 노력으로 진도아리랑은 점차로 정착되기 시작했고 아리랑보존회를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초창기 진도아리랑 보존회 회원들 중 4명이 현재 인간문화재가 되었으며 그 문하에서 또 제자들이 양성되어 지고 있다고 한다..

↑↑ 박 회장이 아리랑 체험관에 전시된 영천아리랑을 가리키고 있다.
ⓒ 영천시민뉴스
◇ 부녀자들이 주로 부르던 진도아리랑
진도아리랑을 한 수 불러달라는 요청에 박 회장은 망설임 없이 손장단에 맞추어 진도아리랑을 부르기 시작했다. “수천리 밖에다 정들어 놓고 오라는 등살에 나는 못살겠네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박 회장은 진도아리랑에 이어 영천아리랑도 불러주었는데 영천아리랑의 음정은 물론 가사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 필자도 박 회장의 장단에 맞춰 영천아리랑을 함께 불렀는데 아리랑은 모두가 함께 공감하는 열린 문화라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진도아리랑을 진도에서는 ‘아리랑타령’이라고 부르는데 부녀자들이 주로 불럿다고 한다.
<5면으로 이어짐>
진도아리랑은 진도에서 불리던 아리랑이지만 전국적으로 알려져 많은 사람이 부르고 있으며 내용은 주로 남녀의 사랑과 이별을 주제로 하고 있다. 가사에 욕, 상소리, 한탄, 익살 등이 거침없이 노출되어 있고 진도의 지역성을 표출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기존 가사를 바탕으로, 새로운 형태의 가사가 노래를 부르는 사람에 따라 계속적으로 덧붙여 지는데 이를 선후창 형식의 돌림노래라고 한다. 돌림노래란 여럿이 부를 때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메김소리를 하고 나머지는 맞는소리(맞음소리)를 하는 것이다. 진도아리랑의 대표적인 가사는 다음과 같다.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 지느냐 / 날 두고 가신 임은 가고 싶어 가느냐 / (후렴)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 아리랑 응응응 아리라가 났네.
문경새재는 왠 고갠고 /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로구나 / 니정 내정은 정태산 같은데 / 원수년의 탄광 모집이 니정 내정을 띤다. (후렴) / 저 강에 뜬 윤선은 바람심으로 놀고 / 점방에 유성기는 기계심으로 논다(후렴) / 오동나무 열매는 감실감실 / 큰애기 젖통은 몽실몽실(후렴) / 씨엄씨 잡년아 잠깊이 들어라 / 문밖에 섰는 낭군 밤이슬 맞는다(후렴) / 서방님 오까매이 깨벗고 잤더니 / 문풍지 바람에 설사가 났네(후렴)
진도아리랑의 창작연대는 확실치 않지만 대략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그때는 유교적 전통문화와 개화문명이라는 새로운 문화 사이에서 가치관의 혼란이 나타나고, 외세의 침탈로 피폐해진 현실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던 시대였다.

◇ 진도 아리랑마을관광지와 아리랑 체험관

↑↑ 아리랑 체험관을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가는 박병훈 회장
ⓒ 영천시민뉴스
진도 아리랑마을관광지는 여괴산 자락인 임회면 상만리에 조성되어 있었다. 귀성포구가 내려다보이는 양지바른 곳으로 첫눈에도 바다와 산비탈의 비경이 예사롭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박 회장은 “아리랑마을관광지가 너무 외진곳에 있어서서 사실 접근성이 떨어지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지 않다. 우리의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영천에서는 접근성이 좋은 곳에 아리랑 관련 시설을 지으라고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진도아리랑마을관광지에는 진도아리랑과 팔도아리랑을 이해할 수 있도록 조성된 아리랑 체험관이 있었다. 큰 북의 형태로 아주 독특한 외관을 한 아리랑체험관은 척 보아도 그 용도가 무엇인지 단번에 알수 있을것 같았다.
1, 2층으로 건축된 이곳은 역사 아리랑 전시실, 이야기팔도 아리랑 전시실, 노래아리랑 체험실, 진도아리랑 전시실로 나뉘어 아리랑의 어원과 유래, 조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아리랑 이야기, 생활속 아리랑, 세계속의 아리랑 등을 주제별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었다. 아리랑 체험코너에는 북, 꽹과리 등을 직접 연주해 볼 수 있는 공간이 있었는데 앞쪽에는 무대가 마련되어 소규모의 공연은 가능하도록 꾸져 있었다. 벽면에는 영상음향시스템을 설치해 아리랑 노래와 장단을 배울수 있도록 조성되어 있었고 음악감상과 정보검색을 할 수 있도록 컴퓨터를 비치헤 놓았다. 또 실제로 진도 아리랑을 불러보고 아리랑 퀴즈에 도전해 볼 수 있도록 해드셋과 퀴즈프로그램 등 다양한 장비들을 비치한 점이 눈에 띄었다.
아리랑 체험관을 둘러보며 특히 기억에 남는 장소는 팔도아리랑 전시실이었다. 이곳에는 강원도 아리랑, 서도 아리랑, 정선아리랑, 밀양아리랑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아리랑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영천아리랑의 악보가 가사가 전시된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낯선 장소에서 영천아리랑을 만난 그 반가움은 이루 말할수가 없었다.

↑↑ 진도아리랑비.
ⓒ 영천시민뉴스
◇ 첨철산에 진도 아리랑비를 세우다
진도아리랑비를 보기위해 진도에서 가장 높다는 첨철산을 넘어갔다. 높은 산이라고는 하지만 해발 485m정도로 사실 그리 높은 산은 아니었다. 아리랑비에 도착하기전 첨철산 고개중 가장 경사가 심하다는 고개를 넘었는데 진도사람들은 이곳을 아리랑 고개라고 부른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진도아리랑비는 진도아리랑 가사가 새겨진 비로서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 첨철산 남쪽 기슭에 세워져 있다. 건립 연월일은 1995년 8월 15일이며 진도문화원에서 건립을 주관했고, 진도아리랑보존회에서 후원했으며 화강암 재질을 사용했다고 한다.
본비와 부비로 이루어진 이 비의‘진도아리랑비’글씨는 장전 하남호 서예가가 썼으며, 본비의 글은 학고 김정호가 썼으며, 부비의 글은 아리랑 안내를 해준 향전 박병훈 회장이 썼다. 비 모형설계 역시 박병훈 회장이 진행했다고 한다.
진도아리랑 비 위쪽에는 아담하고 아름다운 다리가 하나 있는데 이곳이 진도 아리랑교이다. 아름다운 다리기둥이 있는 이 아리랑교에서 다리밟기 놀이를 연차적으로 시연하고 있다고 한다.

◇ 진도 아리랑의 두가지 전설 전해오다
진도 아리랑에는 두가지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고 한다. 하나는 진도 총각과 경상도 처녀의 사랑에 얽힌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진도 총각이 경상도 대갓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다가 주인집 딸과 사랑을 하게 되었는데, 두 사람은 밀애 끝에 쫓기는 몸이 되어 진도로 도망쳐 정답게 살다가 총각은 병으로 죽었다는 이야기와, 진도 총각과 혼약한 한 처녀가 총각이 육지에서 다른 처녀를 데리고 오자 원망하며 이 노래를 불렀다는 이야기이다.
다른 하나는 설이향과 소영공자의 이야기로, 설이향과 소영이 굴재를 오가며 사랑을 하였는데, 어느 날 소영공자가 떠나 버렸다. 슬픔에 찬 설이향은 소영공자가 육지 처녀와 결혼을 하게 되자 사생결단을 내려 했으나 죽지 못하고, 비수로 머리를 자르고 쌍계사의 중이 되었다는 전설이다.

◇ 소규모 축제 통합해 진도 아리랑 축제 되다
진도 아리랑축제는 기존의 ‘군민의 날’ 관련 축제와 남도민요경창대회, 그리고 진도군 의신면 돈지리에서 같은 시기에 개최되던 진도아리랑경창대회와 논배미축제 등의 소규모 축제 행사들을 모두 취합하여 2002년 진도아리랑축제로 통합해서 치른다. 엄밀히 아리랑 축제라기 보다 진도군의 축제 명칭을 진도아리랑으로 명명했다고 보면 된다.
진도아리랑 축제는 짧게는 3일 길게는 9일동안 펼쳐지는데 행사의 내용으로는 ‘군민의 날 기념식’과 ‘진도민속경연대회’를 비롯하여 ‘남도민요전국경창대회’ ‘논배미축제’등이 다채롭게 열린다. 진도아리랑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프로그램은 ‘남도민요경창대회’로 진도아리랑축제의 가장 큰 행사라고 할 수 있다. 남도민요경창대회에서는 ‘진도아리랑’을 필수 곡목으로 포함해야 한다고한다.
박병훈 회장은 “처음에는 진도아리랑이 하찮게 여겨졌고 가사를 수집하는 나를 말리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아리랑이 귀하게 불리고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재로 등록되리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일거예요. 영천도 영천아리랑의 발전을 견인해 가는 누군가가 꾸준히 아리랑을 연구하고 발전시킨다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라고 말했다.

- 장칠원·최은하 기자 -
영천시민신문 기자  smtime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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