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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조선족아리랑’ 책자에 ‘영천아리랑’ 3가지 수록
5회 : 중국서 듣는 디아스포라 영천아리랑
2016년 10월 05일(수) 18:33 [영천시민신문]
 
글 싣는 순서
1회: 영천아리랑 역사의 의미 재조명
2회: 인류무형유산 영천아리랑의 현주소
3회: 민요의 고장 전남 진도 아리랑 타령
4회: 아리랑의 원류 정선아리랑 배우다
5회: 중국서 듣는 디아스포라 영천아리랑
6회: 영천아리랑과 함께 두만강 건넌 사람들
7회: 영천아리랑, 전승·발전을 위한 제언


↑↑ 아리랑 팻말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은 대한민국 취재팀과 연길시 조선족 문화인들(왼쪽부터 김연갑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 손영애 시민기자, 김철학 아리랑대형극심포니 대형가극 감독, 전화자 연변대학 교수, 김봉관 선생, 김봉관 선생 부인, 김희관 연변조선자치주문화국 전임국장, 박장수 연변음악가협회 주석 사무국장, 장칠원 국장).
ⓒ 영천시민뉴스
일제강점기 만주로 강제이주 당한 영천 지역민들에 의해 불려지던 영천아리랑의 역사를 재조명하기 위해 연길행 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영천아리랑 귀향의 최종 경유지는 북한이었으므로 이동경로의 첫 수순은 북한지역에서 시작해야 했으나 방문이 불가한 지역이었으므로 다음 경유지인 연길로 가야만 했다. 2005년 영천아리랑제를 처음 시작하던 시기에 영천아리랑의 역사를 정립하고 강연을 해주었던 한겨레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이사에게 이번 여정의 동행을 부탁했을 때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러겠노라 답변이 왔다. 인천공항에서 9시20분에 출발하는 연길행 항공기를 타기 위해서 영천에서 새벽 1시50분에 출발했다. 장칠원 국장, 최은하 기자, 손영애 시민기자, 아리랑 연구가인 김연갑 선생으로 이루어진 취재팀이 연길에 도착한 것은 현지시간으로 11시 20분경이었다. 공항에는 아리랑 연구가인 김봉관 선생과 안내를 자처한 전 용정시 문화관 관장이자 사진가인 이광평 선생이 운전기사와 함께 마중 나와 있었다.

↑↑ 김봉관 선생이 영천아리랑 자료를 보여주고 있다.
ⓒ 영천시민뉴스
◇ 조선족아리랑 김봉관 선생 만나다
76세 노령의 김봉관 선생이 직접 공항 입구에 마중나와 있을 때부터 이들이 우리 일행에게 보내는 각별한 친절을 느낄 수 있었고 이 극진함은 취재기간 내내 계속되었다. 이광평 선생은 통역과 안내를 자처했고 사진촬영까지 진행해주었다.
연길 시내에 접어들자 이국적인 풍경이 눈에 다가왔다. 가장 신기했던 것은 한글과 중국어가 함께 쓰인 간판들이었다. 후에 이 간판이 조선어와 중국어를 꼭 병행하되 조선어를 먼저 쓰도록 한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법령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일행은 한국식 식당에서 김봉관 선생이 대접해 준 한국식 점심을 먹고 김봉관 선생의 자택을 방문하는 이후의 일정에 대해 논의했다. 김봉관 선생은 연길시내의 30평형대의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집안의 인테리어와 가구가 정갈하고 기품이 있었다.
김봉관 선생은 악기와 책이 보관되어 있는 서재로 일행을 안내했다. 그리고 3가지의 영천아리랑이 수록된 자신의 책을 보여주며 선생이 적립하신 아리랑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김봉관 선생이 아리랑에 대해 집필한 책은 2015년 5월 발행된 ‘중국조선족아리랑’과 올해 8월 2권으로 발행된 ‘중국조선족민요전집’이었다. 김봉관 선생은 책에 직접 작가의 사인을 넣어 일행 하나하나에게 선물했다.
김봉관 선생은 “최근 연길지역 조선족들이 한국, 일본, 미국 등에 많이 가서 살며 또 출세하길 바라는 부모들에 의해 한족 학교에 많이 진학한다. 그러다 보니 민족의 얼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다행히 내가 연길시 문화관(국가 문화부에 소속된 공공기관)에 근무할 당시 민요를 수집·조사·연구 해왔고 그 자료들이 지금 이 책이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김봉관 선생이 집필한 9권의 책을 책장에서 꺼내어 보여주었다.
김봉관 선생은 이 책들을 집필하면서 시력을 잃게 되었다고 한다. 딸이 사는 일본에 가서 수술을 받고 우여곡절 끝에 회복 되었지만 밝은 곳에 나갈때는 꼭 색안경을 써야하고 컴퓨터의 화면을 돋보기로 들여다 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가 돋보기로 컴퓨터 화면을 확대하면서 책을 집필하는 풍경은 일대 조선족 문화인들이겐 유명한 일화가 되었다.
김봉관 선생은 1940년 생으로 화룡중학과 연변예술학교작곡이론반을 졸업하고 1972년 연길시문공단의 악대대장, 연길시 문화관 부관장을 지냈다. 이후 연길시가무단장, 문화국 창편실 주임, 창편실 평위부 연구원, 연변음악가협회이사, 중국조선족전통음악연구회 전통음악위원회 부주임 등을 역임하며 조선족 문화인의 대명사가 된 입지적인 인물이었다.
중국 정부는 문화부 산하에서 3차에 걸쳐 조선족에 대한 자료를 집대성 했는데 김봉관 선생은 1978년부터 시작된 3차 자료조사팀에 포함되어 동료들과 함께 조선족 민요와 아리랑에 대해 조사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겼다고 한다. 이 기록들 중 아리랑을 모아 편찬작업을 시작한 것이 2010년으로 조선족 아리랑이 중국 정부에 의해 무형문화재로 등록되던 그 즈음이다.

↑↑ 김봉관 선생이 책을 증정하고 있다.
ⓒ 영천시민뉴스

↑↑ 김봉관 선생이 집필한 책들.
ⓒ 영천시민뉴스
김봉관 선생이 조사하여 엮는 ‘중국조선족아리랑’과 ‘중국조선족민요전집’에는 3종류의 ‘영천아리랑’이 수록되어 있다. 가장 오리됀 것이 1962년 구룡환이 부르고 리황훈이 채보한 ‘영천아리랑’이고 그 다음이 리현규가 부르고 김봉관이 채보한 것이다. 가장 최근의 것이 전화자가 부르고 김봉관이 채보한 ‘영천아리랑’으로 김봉관 선생에 의하면 전화차 창의 ‘영천아리랑’이 가장 정확한 것이라고 한다.
가장 정확한 아리랑을 불렀다는 전화자 연변대학 교수는 연길지역에서는 아주 유명한 민요가수로 연길TV에 수시로 등장했었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를 안내하던 운전기사는 전화자 씨를 보자마자 무척 반가워하며 TV에서 보던 분을 직접 뵙게 되어 영광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전화자 씨는 영천아리랑을 그녀의 스승인 김문자 씨에게 배웠다고 했는데 김문자 씨 역시 연길과 북한의 민요사에서는 결코 빼놓고 설명하기 어려운 독보적인 인물이다.

◇ 김문자와 전화자, 정은하와 전은석
김문자는 1908년 황해도 해주에서 출생했는데 ‘예기권번’을 졸업하고 해방 후 1958년 연변예술학교에 초빙되여 교편을 잡게되였으며 이때 전화자에게 서도 민요와 함께 영천아리랑을 들려주었다고 한다.

↑↑ 전화자 교수(민요가수)
ⓒ 영천시민뉴스
전화자 교수는 김문자 선생의 유일한 제자로 조선족전통예술인의 시조를 이어받아 50여년의 예술생애를 이어온 연길에서는 유명한 인물이다.
1943년 길림성 화룡현에서 출생했으며 1963년에 연변예술학교 민족성악전업을 졸업하고 학교에 남아 민족성악 교원직이 되었다. 1980년 상해음악 학원 민족성악전과 졸업하고 1990년에는 한국에서 국립국악원 방문학자로 2년을 공부하기도 했다. 이후 연변대학 연변예술학원에서 민족성악 학부장과 교수를 겸했으며 중국음악가협회 회원. 중국 소수민족성악학회 이사 등을 지냈고 퇴직 후 조선민족성악인재를 배양하고 있다. 영천아리랑을 비롯하여 농부가, 평북녕면가, 신녕변가, 잦은 난봉가 등을 아주 잘 부른다고 한다.
김연갑 이사는 “김문자-전화자로 이어지던 영천아리랑이 영천으로 귀환해 정은하-전은석으로 어졌다.”며 영천아리랑 계보를 다시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 사과가 많이나는 고장의 아리랑
김문자와 전화자의 설명을 마친 김봉관 선생은 북조선에서 구했다는 가리오케 반주에 맞추어 ‘영천아리랑’을 직접 불러주기도 했는데 그 순간 함께했던 일행이 모두 숙연한 자세로 아리랑을 들었다. 김봉관 선생의 ‘영천아리랑’곡조가 끝나자 김연갑 이사가 김봉관 선생에게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북한에서 영천아리랑이 1954년 ‘조선민요곡집’ 처음 기록되는데 그때 경북 영천 민요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후 80년대 나온 책에는 영천이 대구 인근의 사과가 많이 나는 고장이라는 설명까지 쓰여있어요. 그런데 최근 모 방송국에서 출처불명의 영천아리랑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일부는 이 영천이 중국의 영천이나 북한의 용천일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김봉관 선생은 “북한에 영천이 있는가?” 라고 되물었다.
“아뇨 북한은 영천이 아니고 2004년 폭발사고가 났던 용천지역이 있지요.”
김봉관 선생은 “조선족 아리랑에서는 한번도 북한의 용천이라거나 남한의 영천이라던가 하는 논의를 가진적이 없지.”라며 다시 답했다.
<15면에 계속>
김연갑 이사는 “또 어떤 사람들은 북한의 ‘랭산모판큰애기아리랑’에서 영천아리랑이 나왔다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들은 김봉관 선생이 중국정부가 북조선에서 수집한 민요의 총람을 뒤지기 시작했다. 가나다순으로 정리된 어디에도 ‘랭산모판큰애기아리랑’은 없었다. 김봉관 선생은 “북한의 민요는 여기 다 수집되어 있는데 ‘랭산모판큰애기아리랑’라는 민요는 확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김연갑 선생은 “없을 수 밖에 없죠. ‘랭산모판큰애기아리랑’은 1950~60년대 이후 영천아리랑 곡조를 가지고 북한에서 새롭게 만든 것이니까요. 당시 주체농법(主體農法)의 하나인 2모작 모내기를 선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노래라고 합니다.”그러자 이광평 선생이 ‘랭산모판’이란 찬물에 그대로 모판을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연갑 이사가 “선생님 독립군 아리랑을 아시죠? 독립군 아리랑이 영천아리랑 곡조입니다. 그런데 독립군 아리랑이 중국 상해에서 불려졌고 북한에서 먼저 불려진 것이 아니잖아요? 독립군아리랑으로 불리다가 청주아리랑이 발견된 것처럼 영천아리랑도 60년대에 확인이 되었어요.”라며 말을 이었다. “근데 중요한 것은 일제시대때 유명한 민요 연구가인 김사엽씨가 1935년 소화 10년에 경북 민요와 신민요에 관한 연재를 조선일보에 하는데 거기에 바로 영천아리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말은 1935년 영천지역에서 중국으로 이주하는 전후 과정에 분명히 영천아리랑이 존재했었다는 증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김봉관 선생은 “북한에서 영천이 대구옆 사과가 많이 나는 고장이라고 적었다면 그것이 맞는 것이지.”라고 말했다.
이후 일행이 아리랑 채보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알고 싶어하자 김봉관 선생이 아주 오래된 자료뭉치를 풀고 거기서 1978년 당시 리현규를 만나 채보하며 수기로 기록했던 문서와 리현규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 디아스포라의 영천 아리랑
전화자 교수를 직접 만난것은 연길시내의 한식당에서였다. 그곳에는 김희관 연변조선족자치주문화국 전임국장과 박장수 연변음악가협회 주석 사무담당, 김철학 아리랑대형극심포니 대형가극 감독 등이 동석했다.
김희관 문화국 전임국장은 김봉관 선생이 책을 집필할때 문화국 국장으로 있으면서 예산을 확보 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 인물로 그의 어머니의 고향이 경북 청송이라고 했다. 당시 부모를 따라 강제이주한 김희관 전임국장의 어머니는 경상북도 사람이 많이 살았다는 흑룡강성 상지시에서 살았다고 한다.
문득 1995년 영천아리랑을 불렀던 차병걸 노인이 흑룡강성 상지시 로가기향 신승촌의 영천사람들에게 영천아리랑을 배웠다는 증언이 생각났다.
대화를 이어가며 김연갑 선생은 아리랑을 ‘신생아성 울음현상’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어머니 배속에서 막 나온 신생아들이 동시에 울음을 터트리듯 모국을 떠난 우리 동포들이 배운적도 없었던 아리랑을 부른다는 이야기였다. 중국동포, 러시아 동포, 사할린 동포, 정신대 할머니들 까지도 자기 존재를 아리랑으로 증명한다는 것이다. 디아스포라의 영천아리랑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대한민국 시민신문 취재팀과 중국 조선족 동포들은 밤이 깊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장칠원·최은하 기자
영천시민신문 기자  smtime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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