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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문화유산 재발견⑦선비정신 깃든 모고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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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이 트여진 독특한 건축양식… 사극 드라마 촬영지
훈수·지수 선생 후학 양성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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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3월 14일(화) 09:27 [영천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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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모고헌 외부 전경을 설명하고 있는 지봉스님과 후손 정윤극 씨. | | ⓒ 영천시민뉴스 | | 화북면 자천소재지를 지나 보현산 천문대 방향으로 들어서 가다보면 횡계마을이 나온다. 도로의 왼쪽 돌담 안으로 오래된 기와건물이 서있어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지난 12일 찾아간 횡계서당은 지금 오래된 지붕의 기와가 붕괴될 조짐이 보여 보수공사를 시작한 상태였다. 서당은 조선의 학자인 훈수 정만양과 지수 정규양, 두 형제가 제자를 가르치고 후학을 양성하던 곳으로 마당가운데 300년 수령의 향나무가 웅장하게 자리를 잡고 지켜온 세월을 대변하고 있다.
이날 영천역사문화박물관의 지봉스님이 동행했고 횡계마을에 거처하고 있는 훈지선생의 10세손인 정윤극 씨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정윤극 씨는 “보수작업이 시작된지 해를 넘기고 상당한 시간이 지났지만 이 상태로 두고 있어 맘이 좋지 않다.”며 경내를 소개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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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독특한 건축양식을 설명하는 모습. | | ⓒ 영천시민뉴스 | | 서당 건물은 강당과 동재가 직각모양으로 배치되었고 강당은 15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하지만 역시 서당건물보다는 벼랑 끝으로 서있는 정자(모고헌)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모고헌(태고와)은 6칸 규모의 누각으로 낭떠러지 위에 지어진 이유로 전면에서 보면 2층 누각형태지만 서당의 마당 쪽에서 보면 단층기와집이다. 또, 방 하나에 마루(회랑) 하나가 있다는 것, 방의 사방에 문이 있고 문턱이 매우 높고 대들보의 보(일명 소꼬리보)가 독특한 모양인데 네 개가 똑같다는 등 몇 가지의 이유로 건축학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후손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바로 이 건물이 1992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71호로 지정된 것이다. 사면이 트여진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영남지역에서는 유일한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한다. 1701년(숙종 27)에 정규양(1667~1732)선생이 대전동에서 이곳으로 이주해오면서 건립한 것으로 처음에는 태고와(太古窩)라 했으나 1730년(영조 6)에 후학들이 개축해 ‘모고헌’이라 불렀다. 체격이 크지 않은 한사람이 누울 크기의 방을 중심으로 외곽으로는 작은 마루를 두른 모양이고 횡계 계곡 쪽으로 창을 낸 독특한 구조로 생겼다. 건축기법에서 당시의 모습이 잘 나타날 뿐 아니라 주변의 자연환경과도 잘 어울리는 정사각형의 평면적 구성도 독특하고 예쁘다고 느껴졌다.
2년 전 방송피디가 한말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이곳에서 지난 2015년에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드라마(화정) 2회분을 촬영해 기사를 쓴 기억이 있다. 당시 담당PD로부터 “조선중기라는 시대 배경과 공간적 배경이 가장 잘 맞아 떨어지는 분위기라 이곳을 섭외해 촬영하게 됐다. 자연풍광이 무척 아름답기도 하고 건물도 깨끗하게 보전되어 있어 매우 훌륭한 촬영 장소다.”라 말했었다. 천천히 둘러보니 그 평가가 무색하지 않았다.
역사문화박물관의 지봉 스님은 “원래 건축당시에는 태고와(모고헌)의 사방을 가린 벽이 없었을 겁니다. 이곳은 기거하기 위한 장소가 아니었어요. 자연풍광을 내다보며 감상하는 장소라기보다 자연 속에 들어가 함께 어울릴 수 있게 하려고 만든 장소였음에 틀림없어요. 선생들은 사계절의 풍광이 모두 새롭고 사방이 트인 은둔형의 아름다운 각(태고와)에서 강학하고 풍류를 즐겼을 겁니다.”라 첨언했다. 덧붙여 “훈수·지수 두 선생은 우리지역에서 많이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그냥 묻혀갈 위인들은 결코 아니죠. 친필문서 외에도 많은 관련 자료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연구할 가치가 충분한 자랑스러운 영천의 인물입니다.”며 “만양·규양 두형제의 아래로 몽양이라는 아우까지 삼형제가 있었고 몽양선생은 두형의 제자이기도 해 어떤 심부름도 해내고 많은 책을 직접 필사할 만큼 형님들을 잘 따랐어요.”라고 필자가 몰랐던 사실을 언급했다.
여기서 훈수·지수 형제의 이야기를 잠시 언급해 보자면, 조선중기 성리학자인 지수 정규양, 훈수 정만양 선생은 숙종 때 성리학자들로 양수 선생이라 일컫고 있다. 그들의 호에 들어간 훈(塤)과 지는 악기의 이름으로 훈은 흙으로 만든 피리를, 지는 대나무로 만든 퉁소를 지칭한다. 옛글에서 따온 말로 ‘훈지아주’는 형제가 서로 우애 깊음을 비유할 때 쓰이는 말이라는데 그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평생을 함께 지내며 형제애를 지켜온 영천의 조선후기 대표적 영남 남인학자인 것이다. 1701년 대전동에서 학문의 불모지에 가까운 횡계리로 이주해 서당과 태고와를 짓고 형제가 은둔생활을 하면서 많은 제자(정중기, 조현명, 정간, 이유, 신준 등)를 가르치며 ‘훈지록’ 외에도 100여권의 저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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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담장밖에서 보이는 횡계 서당건물. | | ⓒ 영천시민뉴스 | | 후손인 정윤극 씨는 “지금의 형편이 닿지 못해서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다 해도 이 상태가 유지되기만 한다면 뒤에 또 누군가 지켜가지 않겠습니까.”라며 “훈수 선생은 충(忠)·효(孝)·공(恭)·검(儉)을 유지로 남기셨어요. 가진 것이 없어 굶기를 부잣집 밥 먹듯이 하셨으나 네 가지 덕목의 뜻을 잊지 말고 새겨나가라고 가르친 겁니다.”라 설명했다.
거추장스런 옷을 벗기듯 태고와를 두른 어색한 벽을 벗겨내고 사방이 트인 모습을 그려 보았다. 계곡물을 가두어 배를 띠워 유유자적하던 선비들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하루빨리 보수공사가 완공되어 유서 깊은 횡계마을의 아름다운 서당이 그 고고한 자태를 되찾기 바란다.
- 박순하 시민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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