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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세기동안 한우물 판 사람들… 내가 진짜 영천 지킴이야
반 세기동안 한우물 판 사람들… 내가 진짜 영천 지킴이야
2008년 10월 13일(월) 17:38 [영천시민신문]
 
마을 입구를 지키는 한 그루 소나무처럼 60년 혹은 70년 세월 동안 영천의 역사를 묵묵히 만들어 온 이들이 있다. 특별히 자랑할 것도 내세울 것도 없지만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는 영천 지킴이들. 그들의 삶은 자칫 과거 속에 머문 듯 보이지만 그러나 그 치열한 역사는 여전히 진행형이었다. 영천을 만들고 지켜온 삶의 역사 속으로 뛰어 들어가 보았다.

↑↑ ▲ 현재까지 오랜 단골들을 치료하는 추정엽 의원
ⓒ 영천시민뉴스

↑↑ ▲ 옛 주치과 건물 앞에서 가족들과 함께 기념촬영.
ⓒ 영천시민뉴스

"66년동안 한곳에서 진료했죠"- 창구동, 추치과 의원
창구동 농협과 작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선 오래된 건물 2층에는 '추치과'라는 낡은 썬팅지가 붙은 창이 보인다. 계단을 올라 '추치과'의 문을 여니 66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치과의원을 운영했던 백발의 추정엽 의원이 의자에 앉아 바둑TV를 틀어놓고 바둑삼매경에 빠져 있다.
열 다섯살 때 치과의료계에 뛰어들었으며 추치과를 개원한 스물 두살 때부터 88세의 현재까지 66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키며 치과의원을 운영한 노신사는 기자수첩에 또박또박 글을 써주며 그간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자연과학계열의 학생은 군대가 면제되던 시절이어서 치과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말문을 여는 추 의원. 학교를 졸업하고 첫 부임지가 지금 이 장소에 있던 의원이었고 22살인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 미나미치로 부터 첫 의사면허를 받아 '추본치과의원'을 개원했다고 했다. 이어 광복이 되고 미군정이 들어섰을 때는 '동아루하지'라는 미군부의 수장이 다시 의사면허를 주었는데 그 번호가 236호였다고 한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에서 236번째로 문을 열었던 병원이라는 뜻이다. 대한민국정부가 들어서자 보건위생부 장관령 면허가 다시 나왔다고 했다.
추치과는 한때 영천의 번화가였던 지금의 자리에서 6~7명의 간호사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환자를 돌보던 곳이었다. 영천은 물론, 부산, 청주, 속초 등 전국에서 온 환자들의 너무 많아 식사시간도 잊고 진료에 임한적도 있었다. 박치과, 오치과, 영천치과 등이 있었지만 그들과의 경쟁에서 항상 이겼을 만큼 일에 몰두했다. 화장실에 있다가도 손님이 오셨다고 하면 허겁지겁 뛰어나왔다.
현금이 제일 많은 영천 제1의 제력가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지방의원에 당선되기도 했고, 자유당 원내총무를 지내기도 했으며 대한철도이사협회 촉탁이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수십년동안 지역 초중고 42개 학교의 교의를 지내기도 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자 6.25 전쟁 때 자양까지 피난을 다녀온 이야기, 당시 경찰서 등이 불탔던 6.25 폭동이야기, 주로 현금을 보관하는데 박정희 정권 때의 화폐개혁으로 피해를 입었던 이야기, 아리따운 일본인 여성 오노 야스꼬와의 첫사랑 이야기를 펼쳐놓기도 했다.
66년의 역사만큼 추치과에는 단골들이 많다. 오래된 단골들은 모두 돌아가셨고 그 후대들이 다시 추치과의 단골이 되었다고 했다.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손자까지 4대에 걸쳐 추치과에서 치료를 받는 집도 있다고 한다.
묵묵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66년의 세월을 흘러 보냈다고 말하는 88세의 추정엽 의원은 매일 아침 등산으로 건강을 유지한다고 한다. 새벽 4시부터 1시간 40분 동안 비가오나 눈이오나 산에 오른다. 눈이 많이 온 날을 제외하고는 아침등산을 빠뜨린 적이 없다고 말하는 추 의원의 등산역사는 '추치과' 역사만큼 깊다.
아내가 먼저 하늘로 가고 병원건물 3층 사택에서 혼자 생활하는 '추치과' 의 추정엽 의원은 거실에 걸린 사진들을 펼치며 대구대학 특수교육과 교수인 아들과 한의사인 손자 자랑을 한다. 돌아가려는 필자에게 추의원은 "나는 영천에만 몰두했고 외지는 잘 몰라. 내가 영천 지킴이야"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 영천시민뉴스

"까다로운 멋쟁이들 모두 거쳐 갔죠"- 교촌동, 동아이용소
"30년 전쯤엔 이 동내가 영천의 중심가였어요. 영천극장이 이 골목에 있어서 그 당시 배우와 가수, 사회자들이 공연을 위해 이 골목을 지나가곤 했었죠. 현희, 박노식 등의 대 스타들과 조석현 안다성 등의 아나운서들이 우리 이용소에서 머리를 하고 갔어요. 머리를 해주고 있으면 동네 아이들이 유리창으로 넘겨다 보곤 했었죠."
열다섯살에 이발사의 길로 접어들었고 열일곱살부터 지금의 동아이발소에 첫발을 디딘 후 쭉 그 자리를 지키며 살아온 최진영씨(64세). 갈고갈아 날이 절반쯤은 없어진 면도칼, 닳아 낡아진 바리캉(이발기)에는 최진영씨가 이발사로 살아온 40여년의 삶의 흔적이 묻어있다.
"그 당시 취업 잘 하는 것이 양복방, 이발소, 자전거 고치는 곳, 우동집 등이었어요. 직장이 많지 않은 세월이었죠. 이발소에 취직을 하고 개업을 한 후 여기서 세월을 다 보냈네요. 가끔 꿈을 펼쳐보지 못해 발전성이 없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동아이발소에는 40년 단골들이 수두룩 하다. 그때 신혼이었던 사람들이 지금은 할아버지가 되었고 아버지의 손을 잡고 드나들었던 아이들이 50대가 되어 이곳에서 머리를 자른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용실을 이용하고 이용업은 사양길에 접어든지 오래다.
한때는 5~6명의 아가씨와 2~3명의 종업원을 두고 운영할 만큼 바빴다. 바쁜 만큼 돈이 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큰돈이 벌리는 직종은 아니라고 최진영씨는 말한다. 대신 큰아들을 의대에 보내 의사를 만들었고 약사 며느리를 들였다. 주변 사람들이 자식 잘 됐다고 부러워한다고 말하는 최진영씨의 얼굴은 뿌듯함이 서려있다.
"그때도 유행에 민감한 사람들이 영화 청춘스타에 나왔던 신성일 머리를 해달라는 등의 주문을 했었죠. 유행에 맞는 머리를 잘 만진다고 소문이 나서 손님이 많았어요. 영천의 까다로운 멋쟁이들은 모두 여길 거쳐갔습니다. 머리 하나는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나이가 들어 찾아오는 고객도 줄고, 배우려는 후계자도 없습니다. 그 좋은 기술을 써먹을 데가 없네요. 이용업이 사양길로 접어드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 영천시민뉴스

"3대를 잇는 도장의 장인정신" 창구동, 대성당
우리나라가 근대화와 산업화를 거치면서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3대가 가업을 잇는 일은 흔치 않다. 3대를 이어 도장을 세기는 장인의 집 "대성당" 그래서 더 빛을 발한다.
9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도장의 장인 권혁동(79세)씨는 아버지로부터 가업인 "대성당" 을 물려받았다. 화북 자천에서 오랫동안 "대성당" 을 운영하다가 더 장사가 잘 되는 영천으로 나오고도 "대성당" 이라는 상호를 그대로 썼다. 아버지와 함께한 시간을 더하자면 권혁동씨는 스무살 때 부터 줄곧 도장을 파는 일에 전념했고 60년을 도장과 함께 살았다.
권혁동씨는 "선친께서는 도장 파는 일을 천직으로 알았어요. 실력이 좋아 경북 여기저기서 영천까지 도장을 파러 왔었어요. 뛰어난 필체를 가진 선친의 도장은 요즈음 컴퓨터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못 따라옵니다. 도장파는 일이 쉬운 것 같지만, 그림, 글씨, 조각에 능하지 않으면 하기 어려운 일이지요. 아버지의 도장은 예술의 경지였어요."라고 말하며 오래된 노트에 찍힌 선친의 도장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버지에게 "대성당" 이라는 도장방을 물려받은 권혁동씨도 3년 전까지는 직접 손으로 도장을 팠다. 스무살 때부터 시작한 도장일이 손에 익어 남들은 벌써부터 컴퓨터를 도입했지만 권혁동씨는 늦게까지 손도장 팠다. 그런 권혁동씨에게 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조각대(도장을 팔 때 고정하는 틀)와, 붓, 주먹(붉은 먹)은 보물에 다름 아니다.
"솜씨 좋은 아버지에게 원망을 들어가며 배운 도장일을 저 역시 천직으로 알았어요. 도장을 파서 가세를 일구고 자녀와 동생들을 대학에 보냈지요. 한때는 군청, 경찰서, 면사무소 등에서 도장을 많이 파갔어요. 그때는 일반 공무원의 두세배 수입을 올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절반도 못돼요. 양복방, 구두방, 시계방 등 기술사업은 다 죽었지요"
아버지에게 손도장 파는 법을 배운 권혁동씨는 아들에게 그 기술을 전수해주지는 못했다. 첨단의 기계가 도입되어 이제는 권혁동씨도 컴퓨터와 자동기계로 도장을 파기 때문이다.
권혁동씨는 "옛날에는 상아와 각도장(무쏘 뿔로 만든 도장)을 만드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런것들이 권위와 품위를 상징하기도 했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도장을 파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어요. 세상이 많이 변했어요"라고 미소 짓는다.
최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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