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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①]별난 사람, 별난 영천… 싸움에 진적 없는 영천의 역사
1회 : 별난 사람, 별난 영천… 싸움에 진적 없는 영천
2020년 09월 15일(화) 08:50 1128호 [영천시민신문]
 
글싣는 순서
1회 : 별난 사람, 별난 영천… 싸움에 진적 없는 영천
2회 : 이어지는 무패정신… 영천성 수복전투를 알다
3회 : 전투메모리얼파크 추모권역, 체험권역 재조명
4회 : 이순신 장군 최초 승전지…옥포대첩 기념공원
5회 : 다양한 전쟁유적지 활용… 포로수용소유적공원
6회 : 6·25전쟁 최초 승리… 감우재 전승기념관 방문
7회 : 영천, 다부동전투와 함께 낙동강방어선 지키다
8회 : 6·25전쟁 역전의 발판마련… 참전용사와 만남
9회 : 호국도시 영천을 만들다… 지역단체장 인터뷰

국난극복의 수도 영천은 대첩비와 전적비가 각각 1개씩 있고 전승비는 2개가 있다. 바로 지고는 못사는 영천인들의 별난 정신이 깃들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기획취재는 국난극복의 수도인 영천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을 재조명하고 영천만의 나라사랑 정신을 고취시키고자 한다. 기획취재 1회차에는 영천만이 보유하고 있는 전승비 2곳을 취재하여 이들이 주는 호국정신을 되새기는 자리를 마련했다.
<편집자주>

영천에는 대첩비와 전적비가 각각 1개씩 있고 전승비는 2개가 있다. 영천대첩비는 영천전투메모리얼파크 추모권역인 국립영천호국원에 위치해 있고 영천전적비는 전투메모리얼파크 체험권역인 마현산에 위치해 있다. 영천대첩비와 전적비의 자세한 내용은 기획취재 3회차 ‘전투메모리얼파크 추모권역, 체험권역 재조명’에서 다루기로 한다. 영천에는 영천전투와 신녕전투를 기리를 2개의 전적비가 있다. 기획취재 1회차에는 영천전투와 신녕전투에 대하여 알아보고 여기에 따른 전적비도 함께 알아보도록 한다.


6·25전쟁 역전시킨 영천전투

↑↑ 영천지구전투전승비.
ⓒ 영천시민뉴스
영천전투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부분이다. 이유인즉 다부동전투의 일부분이 영천전투라는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영천전투는 1950년 6·25 당시 국군 제2군단이 영천지역으로 침공한 북한 공산군을 격퇴하고 방어에 성공한 전투이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시작된 후 1950년 9월 4일 파죽지세로 남침한 북한군 제2군단은 일거에 부산을 석권할 목적으로 전략의 요충지인 영천을 점령하고자 최후의 공세를 폈다. 북한군은 우세한 화력으로 공격해 옴으로써 필사적인 방어에도 불구하고 전쟁 발발 후 70여 일 만인 9월 6일에 남한의 남쪽 지역 영천이 적의 손에 넘어갔다.

1950년 9월 6일 영천이 북한군에게 점령당한 뒤 한국군 제2군단 장병들이 필사적인 공격을 가하여 적을 퇴각시켰다. 하지만 병력과 장비의 열세로 계속적인 수호가 어려워지자 잠시 북한군에게 영천을 내어주었다. 이에 분노한 영천의 주민들은 너나할 것 없이 총을 잡고 공격에 가담하여 국군 제2군단은 다시 재정비를 할 수 있었다. 마침내 1950년 9월 9일 총반격을 감행하고 금호강 변에서 적을 포위하여 섬멸하고 영천 탈환에 성공했다. 이런 중요한 전투를 기리기 위해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비문을 쓰고 1958년 10월 20일 육군 제1205 건설공병단에서 비를 건립하게 되었다.

영천지구 전승비는 처음에는 영천문화원 건물 동편에 위치했지만 영천전투메모리얼파크 체험권역이 건립되면서 2015년 6월 25일 마현산으로 자리를 옮겼다. 약 500㎡ 규모의 부지에 3단의 높은 기단을 계단식으로 놓고 그 위에 주형의 자연석 화강암을 세우고 전면에 세로로 긴 비면을 음각으로 다듬고 비문을 새겼다.

비의 건립 면적은 10㎡이고 평면은 정방형이며 전체 높이는 6.4m이다. 맨 아래의 땅과 접해 지대석을 놓고 입면 상 사다리꼴의 제1층 기단을 마련했다.

그 위에 가로로 긴 직사각형의 제2층 기단을 놓고 그 위에 다시 제2층 기단과 같은 형태의 조금 좁은 제3층 기단을 놓고 자연석 화강암을 세로로 세웠다. 기단은 모두 화강암을 다듬어 조성했는데 제1층은 수평 쌓기, 제2층은 수직으로 쌓은 후 수평으로 쌓아 마감했다. 다시 제3층은 수직으로 옆 세워쌓기를 했다.

영천지구 전승비에는 자연석 화강암에 쓴 ‘영천지구전승비(永川地區戰勝碑)’라는 비명에 음각으로 새겨져 있는데 이 비문은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1층 기단 서 측면에는 비스듬히 경사지게 쌓은 기단면석에 아래에서 제4벌대와 제5벌대의 가운데에 건비 내용을 주조한 동판이 붙어있다.


열흘간 피비린내 나는 신녕전투

↑↑ 신녕지구전투전승비.
ⓒ 영천시민뉴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시작된 후 국군 제2군단과 인민군 제2군단 간의 병력 2만5000명이 1950년 8월 13일에서 9월 14일까지 33일간 영천·신녕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신녕전투는 1950년 9월 6일부터 9월 15일까지 영천시 신녕면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당시 국군 제6사단이 영천 지역으로 진출하려던 북한군 제8사단의 공격을 저지시킨 이 전투는 대구 점령을 목표로 하던 북한군을 격퇴하고 국군과 유엔군의 반격 토대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신녕전투의 배경을 살펴보면 1950년 8월 초 북한군 중동부 전선 담당 제2군단은 공세의 주목표를 대구 점령으로 정하고, 4개 사단과 예하 제8사단을 대구 전선에 집중적으로 투입했다.

그러나 적 제8사단은 8월 7일 의성지구 전투에서 국군 제8사단에게 1개 대대 이상의 병력을 잃는 피해를 입어 전선의 축을 의흥~신녕으로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북한군 제2군단은 다부동~효령 일대 돌파 계획이 좌절되자 제8사단에 전차부대를 증원시켜 신녕~하양을 목표로 침투작전을 전개했다.

9월 초 북한군 제15사단은 영천을 점령했지만 국군 제6사단의 집중 포격으로 북한군 대열을 분산시켰고 유엔군의 공중 폭격에 힘입어 북한의 총공격은 실패하고 말았다.

신녕전투는 영천을 점령하고 있던 북한군 제15사단을 고립시켜 격파하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낙동강 방어선에서 아군이 반격을 시작할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신녕지구 전투는 그 자체의 의미도 있지만 영천지구 전투와 함께 영천 지역에서 국군의 총반격 계기를 만든 전투로 평가된다. 칠곡군 왜관의 낙동강 전투로 유명한 한국전쟁 최후의 보루는 다부동-신녕-영천-안강-포항으로 이어지는 방어선이 만들어지면서 각 지역의 치열한 공방전 끝에 결국 국군이 승리를 하면서 북진의 발판을 이루어냈다.

신녕지구 전승비는 1950년 8월과 9월 치열하게 벌어진 국군 제2군단과 인민군 제2군단 간의 전투에서 승리한 인민군을 북쪽으로 퇴각시킨 육군 제6사단 청성 육탄 용사 및 전몰 영령들의 멸사봉공의 희생정신을 기리고자 1958년 10월 30일 신녕면 화성리 성환산공원내에 건립되었다.

신녕지구 전승비는 성환산공원의 정상부 495m²의 부지에 66m²의 건축 면적으로 축대, 기단, 비를 세웠다. 축대는 2중으로 조성했고 제1단 축대는 원형의 화강암 축댓돌 쌓기로 마감한 다음 제2단 축대 사이에 작은 나무를 심어 조경을 했다.

제2단 축대는 장방형의 화강암으로 가공한 높이 약 90㎝의 세벌대 축대로 평면 형태가 별 모양이다. 제2단 축대 상부의 가장자리에는 난간 동자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를 쇠사슬로 둘렀다.

중앙부에는 역시 별 모양의 시멘트로 마감한 기단을 3단의 계단식으로 조성했다. 기단부 상면 중앙에는 평면 정방형의 시멘트로 마감한 2중 비좌를 놓고 그 위에 사각기둥 모양의 비를 세웠다.

비의 상부에는 독수리를 형상화해 올렸는데 비신(碑身)의 전면 상부에는 별 모양을 박아 놓고 그 아래에 동판으로 된 비명 판을 세로로 붙였다. 기단의 높이는 2.5m이고 비의 높이는 7.5m이다.

신녕지구 전승비 평면 정방형의 콘크리트조 비에는 세로로 쓴 ‘신녕지구전승비(新寧地區戰勝碑)’라는 비명이 양각으로 적혀 있다. 영천지구 전승비의 경우 비문을 자연석 화강암에 음각으로 새긴데 반해 신녕지구 전승비는 별도의 동판에 글자를 주조했다.

이곳에는 매년 9월 전몰 호국용사를 위로하는 위령제를 거행하고 있다. 성환산공원 동쪽의 신녕초등학교는 국가보훈처 경주보훈지청과 현충 시설 사랑을 위한 공동 협력 협정을 체결해 매년 학생들의 봉사 활동과 현장체험 학습의 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 대첩비 : 싸워서 크게 이긴 전투나 전쟁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
※ 전적비 : 전쟁이나 전투가 있었던 곳에 그 사실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

- 장칠원·김기홍 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협의회 지원을 받았습니다
장칠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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