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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명물 찾아갑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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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명물 찾아갑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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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5월 12일(화) 15:36 [영천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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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들이 영천명물을 찾아 나섭니다.
영천시민신문 시민기자 26명이 우리고장의 명물이나 최고기록을 찾아내 새롭게 조명합니다. 매주1회 시민기자들이 직접 만드는 ꡐ영천과 영천인ꡑ 특집면에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급수탑 관광자원화 할 수 없나
문화재로 지정
1900년대 초 철도의 풍운아 증기기관차에 급수를 감당했던 건축물(급수탑)이 우리지역 유물로 남아있어 옛 추억을 떠 올리게 하고 있다.
영천역 내 완산동 891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이탑은 높이가 18m로 상부지름이 하부지름(4.5m)보다 큰 원추형이며 마치 버섯을 세워 둔 형상이다. 영천역 급수탑은 1937년에 설치된 것으로 현재 전국에 21기가 남아 있으며 그중 영천역 급수탑을 포함해 10기는 문화재로 등록 되어 있다.
1930년대 이전의 급수탑은 대부분 석조물로 세워진 것이 특징이나 이 급수탑은 일제 강점기 후반 건축형식인 철근콘크리트조로 물탱크 지붕은 돔형이고 4개의 반원형 창문을 설치하여 환기구로 이용했다. 하부 기계실 출입구는 아치형 문틀로 이루어져 있으며 원주역 급수탑의 연대와 형태가 거의 같다. 또 6.25동란 때 총탄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보존상태가 양호해 철도사적 역사자료의 가치가 있다.
급수탑은 1899년 경인선 개통과 함께 증기기관차가 처음 등장한 이래 1967년 디젤기관차가 출현할 때까지 약 70년간 사용되어 왔다. 또 급수탑은 보통 세네 역마다 하나씩 세워졌을 정도로 그 수가 많았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쓰임이 다하면서 하나 둘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고 그마저도 무관심 속에 파손되고 철거될 위기에 처해있다. 이런 가운데 문화재청은 지난 2003년 1월 급수탑이 보전가치가 있는 근대 건축물로 인정되어 현존 급수탑 중 가장 오래된 연산역 급수탑을 비롯해 추풍령역, 도계역, 영천역, 등의 급수탑을 등록 문화재로 지정했다.
전남 곡성역에서는 2005년 증기기관차를 이용해 옛 향수와 추억을 되살리는 섬진강 기차마을을 관광자원화 하는데 성공했고 파주시는 2006년부터 경의선 장단역(민통선)에 전쟁 폭격으로 멈춘 증기기관차를 원형대로 복원해 현재 임진각 복원센터에 전시하는 등 옛 흔적을 되살리는 노력을 하고 있는 반면 영천역의 급수탑은 탑 부지에 주민이 농사를 짓고 있고 주위 보호망은 녹슬고 헐어 있으며 탑과 함께 수 십년세월을 같이해온 바로 옆 동백나무는 이미 고사해 있는 등 수년간 관리의 흔적조차 없어 보인다.
영천역(역장 배동희)은 문화재 소관이라며 외면하고 시는 일손이 부족해 거둬볼 겨를이 없다고 말해 사실상 방치되고 있는 급수탑은 등록문화재 제 50호 라는 이름표만 가슴에 달고 지금은 처다 보는 이마저 없어 그저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장지수 시민기자>
신발만 봐도 누가 주인인지 안다
시청 구두미화원 황송근씨
유행따라 생김새 비슷한 구두 수백켤레가 한곳에 모아져도 단번에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채는 구두미화원이 있어 화제다.
영천시청 내 북편별관 한쪽 모퉁이에서 구두를 닦는 구두미화원 황송근(60)씨.
비좁긴 해도 황씨는 이곳에서 구두닦이 40년 세월을 이어가며 달인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현재 황씨가 하루일과를 보내고 있는 작은 칸막이 공간은 지난해 취임한 현 시장이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황씨에 대한 배려로 만들어졌다.
시민기자인 필자가 취재를 위해 만나본 황씨는 소문대로 달인이었다.
장부하나 없이도 시청에서 근무하는 280명 회원의 월회비(7천원) 내는 날과 구두 주인을 정확히 외우고 있다. 이제껏 단 한 번도 닦은 신발의 주인이 바뀐 적이 없단다.
매일 오전 9시30분에 출근하여 저녁6시까지 열심히 자기 일에 전염하고 웃음으로 손님인 공무원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가끔씩 손님들이 신발깔창을 찾을 때면 열심히 일하라고 무료로 건네기도 한단다.
황씨는 평생을 술, 담배는 아예 배우지 못하고 비회원들의 신발 닦은 돈 1인당 2천원과 술, 담배 값으로 쓰일 돈을 아껴 남몰래 독거노인, 고아들에게 적은 금액이지만 도움을 주고 있다.
얼마 전에는 부인과 두 자녀와 함께 조촐한 환갑을 치르기도 했다.
황씨는 LG전자에 입사시험을 치르던 딸이 아버지 직업을 구두닦이라고 떳떳이 밝히고서 합격해 9년째 근무하고 있다며 자랑이 대단하다.
또 둘째인 아들은 군복무 후 아르바이트 중이라며 두 자녀를 소개했다.
자신이 열심히 일하고 봉사하며 살아온 덕에 자식들도 착하게 자랐고, 부끄럽지만 표창장도 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현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 두 번이나 초대받은 것 또한 큰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다.
황씨는 "60세가 넘은 나이지만 적은 수입이라도 어려운 이웃을 도와가며 구두 닦는 일이 천직"이라고 했다.
자신이 닦은 깨끗한 구두를 신고 시청과 민원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며 오랫동안 일하고 싶다고 작은 소망을 이야기 했다.
<김민성 시민기자>
교통수단 소달구지 아시나요
금호 양문식씨 관리 어려워 기증
우리 선조들이 가장 순수하고 편리한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던 달구지. 그 달구지가 오늘날 문명의 발달과 함께 경운기 트랙터, 트럭 등으로 대체되어 70년대 말을 기점으로 우리들의 곁에서 사라지기 시작하여 이제는 우리의 주변에서 조차 찾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금호읍 봉죽리 양문식 씨(61세)는 "한마을에서 잘사는 부잣집이라야 고작 한 집이나 두 집이 소유했다."고 선친에게 전해들은 얘기를 하였다.
선친이 아끼던 우리 지역내 하나밖에 없는 소달구지를 버리기가 아깝지만 마당이 비좁고 관리하기 어려워 보관할 방법이 없어 얼마 전에 개인의 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우리 곁에서 옛 조상들이 쓰던 농기구 물건들이 하나하나씩 사라져 가고 있다. 탈곡기, 풍구, 훌쟁, 서레, 작두, 곰배, 같은 것은 그래도 시골에서 조금은 볼 수가 있으나 우차는 거의 보기다 드물다.
다른 농기구는 보관 장소가 협소해도 관리가 되지만 우차는 장소를 많이 차지하기 때문에 보관하기가 매우 힘든 편이다. 그래서 농가에서는 우차를 해체하여 화목을 하거나 전체를 아예 고물장수에게 넘겨 버리는 실정이다.
소달구지 듣기만 해도 50~60대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두 번은 타본 옛 추억이 아련히 떠오를 것이다. 1960년도만 해도 우차로 시골에는 거름을 논에다 내고 벼와 농산물을 집으로 운반하고 장날이면 마을사람들과 공동으로 곡식가마니 무, 배추, 나뭇단을 싣고 운반하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처음 소달구지는 바퀴가 굴참나무로 만들어진 목재에다 바퀴의 바깥부분은 얇은 탯쇠로 둘러 보강된 것을 사용해 오다가 70년대 초반에는 나무바퀴 대신에 자동차 타이어 바퀴로 교체하기도 하였지만 구하기도 어렵고 또한 가격이 비싸 실용화 되지는 못했다고 한다.
옛날에 자동차 없는 거리로 소달구지를 타고 울퉁불퉁 한길로 삐거덕거리며 물건을 운반하든 그때 그 시절이 아름답기만 하다.
<김진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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