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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역사를 중국 역사로 왜곡…나라힘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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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역사를 중국 역사로 왜곡…나라힘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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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8월 05일(수) 10:42 [영천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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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6일부터 23일까지 경상북도 문화원장 18명과 함께 고구려, 발해 유적 탐방의 시간을 가졌다.
인천공항 KE981 대한항공 비행기로 러시아 불라디보스톡 아르참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단번에 라즈돌리예 역을 방문하였다. 라즈돌리예 역은 1937년에 스타린이 한인을 강재로 중앙아시아로 이주가 시작된 가슴 아픈 역으로 꼭 가보고 싶은 곳 이였다. 우리민족의 설음이 쌓여 있는 한이 맺힌 역이다. 연해주는 비옥하고 광활한 땅이어서 농사를 짓기 위해 우리 동포들이 많이 가서 개간도하고 정착하고 살았다고 한다. 주로 두만강을 넘어온 북한주민이 많다고 한다. 우리(경상북도문화원장 18명)일행은 선구자 1,2,3,절 모두를 버스 안에서 다함께 열창 하였고, 분위기는 숙연 하였다. 불라디보스톡(연해주)의 거리는 아직 전차길 놓여있고 중심가는 차들도 많았다. 버스는 한국산 중고버스가 90%이상 거리를 누비고 있었다. 승용차는 일산이 많다. 러시아의 면적은 한국의 78배정도, 인구는 약1억4천만정도, 원유매장량은 무진장이라고 가이드의 설명이다. 불라디보스톡의 교민은 약300명, 고려인3만5천, 시내에는 북한 사람이 많다고 했다. 여기서 2시간 반 가면 사하린이있다고 했다. 사할린 동포는 3만 이상이고, 일재 강점시 강재징용으로 경상도 사람이 주로 많다고 했다.
● 불라디보스톡, 연해주 신한촌 기념 탐방하다.(연해주 강재추방)조선의 정치 불안과 빈곤으로 한인들이 연해주 이주가 시작되었던 1863년 하산지역 남쪽을 중심으로 1870년대 8,400명, 1923년에는 12,000명 당시 한인마을에는 한인극장, 문화회관, 한인자치기관, 한글을 사용 하는 등 한인 정착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는데 1937년 소비에트 인민위원회의 강제이주 명령에 따라 2차래 강재이주가 집행되고 그때부터 러시아에 산재해있는 고려인 동포들의 한과 설음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고한다 고려마을은 바닷가뒤쪽 초가집 마을인대 강재이주후 흔적도 없고 신한촌:비석 한개가있고 철조망 보호 밖에서 보았다 역사의 마음아픈곳, 매년 3월1일, 8월15일 추모식을 거행 한다고 한다. 중앙광장을 거닐고, 전용 버스로 옛 발해성터와 이상설의사 기념비에서 일행 함께 사진을 찍었다.
● 경주이씨 중앙화수회에서 기념관건립등 많이 협찬하는 것으로 설명을 들었다. 신한촌 기념비:민족의 최고의 가치는 자유와 독립이다. 이를 수호하기위한 투쟁은 민족적 정신이며, 정사에 빛난다. 신한촌은 그정신의; 요람으로 선인들의 얼과 넋이 깃들고, 한민족의 피와 땀이 어려 있는 곳이다. 1910년 일본에 의하여 국권이 침탈당하자 국내의 지사들을 신한촌에 결집하여 국권회복을 위한 필사의 결의를 다진 곳이다. 우정마을은 1937년 강재이주후 후손들이 다시 찾아와서 폐허 속을 다시 개간하고, 대한건설협회는 소련이 붕괴되면서 중앙아시아에 살고 있었던 고려인들이 희망을 찾아 자신들의 선조들이 터를 닦았던 연해주 쪽으로 역이주 해오고 있지만 그들의 연해주 정착이 쉽지만은 않았다. 이러한 사정을 들은 대한건설협회는 연해주 중심부인 우수리스크에 약 1000동의 주택을 지어 이주해오는 고려인들의 정착촌을 지으려고 했지만 1997년 터를 닦고 집을 지으려고 했는데 35채 집만 짖고 IMF가터져 공사를 중단하고 2004년 북아평화연대에서 이곳에 입주하여 이주해오는 고려인들의 주택지원, 농업기술지원, 농업대출사업, 중앙아시아에서 이주해온 고려인 30여 가구와 러시아에서 이주해온 4가정 기타 2가정 약100여명이 살고 있다. 우정마을은 고려인을 도우는 단체가 현존하며, 농사와 양돈 등 삶의 터전을 만들어주고 있다고한다,
● 불라디보스톡에서 국제버스 탑승후중, 러, 국경 장영자세관 입국수속후 중국 훈춘으로 국경을 넘는다, 여기에서 러시아의 세관건물은 조금 초라해 보였고, 중국 쪽은 최신건물에 조금 화려했다. 세관쪽 들어가니 조선족이 있어 한국말이 통한다. 훈춘시쪽에 준비된 버스는 신형이고 조선족이 직접 운전, 언어도 통하니 불편함이 없다. 도로는 2차,4차 어떤곳은 8차선까지 주위의 땅들도 거의개간되여 노는 땅이 없어 보인다. 이것이 불과17년전 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17년 전 중국과 국교가 열리고 중국 북경, 상해, 심양, 장춘, 백두산 갈 때는 비포장도로 먼지 투성인대 지금은 거의포장이되고 도로망, 건물들이 너무나 눈부시게 달라졌는 것 느꼈다. 15년 전엔 우리나라 돈이 가치가있어 여행가는 우리나라 여행객은 수월했는데 요즘 상황이 달라져 가는 것 같에. 그때 연길시 시장에 들렸는데 가마니 위에 돼지고기를 파는데 옛날 추있는 들 저울로 달고, 파리가 우글 거렸는데 지금은 완전 연길시가 새천국 같다.
● 연길, 용정, 이도백하
아침 일찍 도문대교 견학하다, 두만강 한복판을 중심으로 국경 이란다, 대나무로 엮은 노졌는 배를 타고, 두만강 푸른 물에 여럿이 함께 노래 불렀다.
*용정도착 대성중학교, 윤동주시비관람, 용두래우물, 해란강견학.
대성중학교도 사전연락한 관계로 윤동주(이상설) 기념관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우리를 환영 하여 주었다. 문화원장 일행이 사전 준비한 액자3점 김종우 道支會長의 친필 액자, 성주 裴원장의 친필 액자, 경주 吳해보원장 울진 全인식 원장 등 전달하고, 금일봉도 전달했다. 참가한 원장들은 특히 각자 금일봉을 전달했다. (사)해외한민족 연구소 1990년. 2월칠판, 분필, 타자기, 복사기, 컴퓨터 등 자재를 지원하고, 특히 금성출판사 회장 김낙준씨가 동교의악기일습을 지원, 합주대를 창설 하였다. 기념사진 촬영하고 민족시인 윤동주의 출신교인 용정중 학교의 재정지원을 한국의 독지가와 단체에서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학생 수는 약2000명 이상으로 알고 있다.(사)해외한민족연구소 전화는 02)720-1357.
이단체가 지금도 중국 조선족의 얼을 심어주고 고구려, 발해 유적 등을 연구, 연구서발간, 고구려 국제학술회의, 중국지역 항일운동 유적연구, 고구려 고분벽화 사진전 등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으로 조국애를 새삼 느꼈다.
<다음에 계속>
-성영관 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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