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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를 흔드는 사람들
냉정하게 법치주의 기본을 생각할 때
2009년 10월 19일(월) 16:00 [영천시민신문]
 
나영이 사건으로 온 세상이 시끄럽다.
사건은 2008년 12월, 8세 된 여아가 강간치상을 당하여, 항문과 성기가 파열되는 등 중상을 입었는데, 최근 확정된 판결은 형량이 12년형이라는 것이 알려지자, 언론에서 피해자의 참혹한 현상에 비해 형량이 너무 낮다고, 한편으로는 어른들의 파렴치한 범죄에 대해 법원이 너무 관대하다고, 판결의 부당성을 대서특필하면서 시작되어 이후 도하 모든 언론과 인터넷의 지면을 도배했다.
그러자, 민감한 일부 정치인들이 이에 질쎄라 너도 나도 한마디씩 거들어 도덕군자인양 한 것이 국회의 국정감사에서 법원의 형량이 낮다는 질타로 이어지고, 유기징역의 상한을 없애자고 발의하는 국회의원이 나타나고, 성범죄 등 11대 강력범죄에 대해서 범인의 유전자를 채취하여 특별관리하는 법안을 준비하겠다고 나서는 연구소도 있다.
그러나 이제 냉정히 생각할 때다. 이 과정에서 법치주의의 기본을 생각해 봤는지, 사법권 독립에 대한 침해는 없었는지, 과연 법관의 양형이 그렇게 비난 받을 정도로 부당하게 낮았는지?
이 사건에 적용될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에 의하면 이 경우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게 되어 있으나, 피고인이 음주 후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에 나갔으므로 필요적 감경을 규정한 형법에 따라 무기형에는 처할 수 없으며, 3년 6월 이상의 유기징역이 법정형이다. 법관은 그 한도에서 형을 선고해야 하는바, 제1심 법원은 그중 최고형에 가까운 12년형과 피고인에 대한 열람정보의 5년간 공개 및 7년간의 위치추적 전자장치의 부착을 함께 선고했다. 피고인이 항소, 상고했으나, 법원은 이를 모두 기각했으며, 검사의 상소가 없었으므로 형량을 더 높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여기에서 법원이 무슨 비난 받을 일이 했다고, 언론과 인터넷에서 연일 법원의 온정적 재판을 질타했던가? 사건 기록을 보지 않고, 법정에서 피고인을 만나 보지 않은 사람들이 모두 재판을 하겠다고 나선다면 사법부가 왜 필요하며, 개개의 재판에 대해 언론이 나서서 비난한다면 우리 사법부가 독립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사법부는 헌법제도 최후의 양심의 수호자로서 제도권의 권력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함은 더 말할 필요도 없지만, 정치권이나 제4의 권력기관으로 등장한 언론과 우리 사회의 무분별한 여론으로부터도 보호되어야 한다.
대법원장이 나서서 확정된 판결에 대해 양형을 논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고 한마디 하자, 두 번이나 대법원 판사를 지냈던 선진당의 이회창 총재가 ꡒ타성적이고 형식적인 사고에 빠져있다. 반성해야 한다.ꡓ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그야 말로 실망천만이다, 그렇게 하던 대쪽 판사가 정치인이 되더니, 다른 판사의 대쪽은 안중에 없고, 사법부의 독립은 발톱의 떼만큼도 생각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유기징역의 상한을 없애자는 주장도 가당치 않은 주장이다. 웬만한 범죄가 몇 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게 되어 있는 우리 형사법 체제에서(예컨대 아무런 상해를 가하지 않는 강도의 경우 3년 이상의 유기징역, 교통사고 후 도주자에 대해서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 건조물, 자동차 등 방화는 2년 이상 유기징역이다.) 모든 피고인들은 수십 년의 형을 선고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험에 처해지고 불안에 떨어야 한다면 형법의 보호적, 보장적 기능은 사라지고, 재판관에 의한 압제나 인권유린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범죄의 성립과 처벌(형종, 형량)을 행위시법으로 정하게 한 죄형법정주의가 기능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여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이 보장적 기능이며, 법이 정한 이상의 범죄는 없으며 가사 범죄에 이르렀을지라도 법에 정한 이상의 형을 받지 않는다는 보호가 주어진다는 것이 자유 민주국가의 자랑이 아닌가?
범죄자의 유전자를 채취하여 특별관리하겠다는 것은 피고인 뿐 아니라, 그 가족과 후대까지 불이익을 주고, 법에 없는 처벌을 하겠다는 발상이 아닌가?
나아가 국정감사에서 재판의 형량을 논하는 것은 삼권분립의 기본을 훼손하는 것으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더 가관인 것은 이걸 기회로 촛불집회를 기획하는 정체불명의 단체도 있으니, 그야 말로 포퓰리즘의 극치를 보는 듯하다.
국민의 도덕감이나, 수치심을 자극할만한 사건이 있으면 이를 실제 이상으로 과장 보도하는 언론의 상술과 이를 기화로 극단적인 주장을 하면서 얼굴을 들어내고 도덕군자연하는 정치인들이나, 할 일 없으니 이럴 때 실컷 퍼붓자고 나서는 인터넷의 논객들, 기회가 왔다 다시 한번 서울광장을 점령해서 세를 과시하자고 나서는 정체불명의 사회단체들 이제는 모두 너무너무 지겹다.
법의 현실적인 적용은 법규와 관습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조리에 따를 것은 다 아는 사실인데, 실제의 재판 등 법실무에서 그래도 분명하지 않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법의 기초인 정의와 상식에 따라야 한다, 정의는 곧 형평과 선이라 할 것이나, 그 최후의 기준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 피해자와 함께 피고인도 똑 같은 한 인간으로 보아주는 가슴 따뜻한 재판관이 있을 때 사법은 형평을 지키고 정의의 수호자로 남을 것이며, 이런 재판부를 격려하며, 판결을 존중해 주는 것이 성숙한 민주시민의 할 일이 아닌가.

-이덕모 영천초등총동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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