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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전투, 8사단·영천시민 자긍심 가져야 한다
신녕전투와 영천시내전투
2011년 10월 18일(화) 11:20 [영천시민신문]
 

↑↑ 한국전쟁사에 나온 사진 한 장, 보현산 전투에서 선전한 21연대장과 참모들
ⓒ 영천시민뉴스

지난주 보도한 영천대첩비는 영천전투에서 승리한 사단들이 모여 만든 기념비다. 영천대첩은 영천전투의 승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영천전투라 함은 신녕전투와 영천시내전투를 말한다. 1950년 8월말부터 9월 15일까지 영천 곳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투에 참전한 부대는 4개 사단(1사단, 6사단, 7사단, 8사단)에 10개 연대다. 이들 부대중 8사단이 나서서 선배들의 용감하고 자랑스런 전투 현장을 기념함과 동시에 국가안보의 영원한 귀감이 되고 전투장에서 산화한 호국영령들의 넋을 위로하는 뜻에서 영천대첩비를 건립했다.
건립 동기는 영천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고 8사단이 주축으로 한 것이기에 순수함과 그 가치는 더 있다.(영천지구 전승비-문화원 위치, 신녕지구 전승비-성환산공원에 위치 2개 전승비도 후배 부대에서 휴전후 세웠음)
8사단은 영천전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직접 방문해 그 흔적을 찾아봤다.
먼저 8사단은 영천전투 승리의 인연으로 영천시와 97년 6월 자매결연을 가지고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매년 1~2차례 상호 방문하는 끈끈한 정을 과시하고 있다.
사단 연병장 중앙에는 독수리 오뚝이 상이 있다. 독수리 오뚝이 상은 지혜와 용맹, 백절불굴 부전상립(백번 꺾여도 굽어지지 않으며, 넘어지지 않고 서 있는것) 상징한다고 하는 8사단 사단 훈이다.
독수리 오뚜기상 주변 가장자리에는 역대 대통령이 쓴 역사적인 글이 있다. 이중에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쓴 “영천대첩 승전 기념” 작은 돌에 새긴 글이 당시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8사단 사단가에 ‘영천대회전’이 첫 단락에 나오고, 8사단 건물 입구에 들어서면 영천전투 사진이 항상 벽에 걸여 있다.
8사단 홍보영상에 영천전투 장면 등이 나오고 있으며, 신병교육에 영천전투가 들어가 있어 이들이 생각하는 영천전투는 영천시민이 생각하는 영천전투와 하늘과 땅차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8사단 신병교육대는 매년 6천여 명의 신병교육생들이 배출되고 있는데, 여기서 나온 병사들은 모두 영천을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값진 것은 사단장실에 있는 6·25참전 당시 부대기가 있는데 기 위에 달린 승전포상리본을 아직까지 잘 보관하고 있었다.
8사단의 혼과 같은 존재다며 보관에 만전을 기했다. 이런 것을 볼 때 영천시민들은 영천전투를 더 자부하고 널리 알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천에서 8사단을 취재차 방문한다고 정훈공보실에 사전 예약하니 정훈공보실에서는 8사단에 얽힌 온갖 이야기와 곳곳을 함께 다니며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또한 사단장에 보고해 사단장까지 시간을 할애해 줬다.

↑↑ 조현천 사단장이 6·25 당시 포상리본을 설명하고 있다.
ⓒ 영천시민뉴스

조현천 8사단장은 “영천분들이 자주 방문하고 있다. 영천하면 3사관학교가 생각나나 8사단의 영천전투가 더 알려졌으면 한다. 영천전투는 우리 군이 대승을 거둔 대첩이며 반격의 전환점에 결정적인 역할을 제공했다. (1사단)다부동전투는 소모전이며, 영천전투는 북한군을 괴멸시키고 여력을 주지 않았기에 더 높이 평가될 수 있다. 결정적인 한방이 8사단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 후 다부동전투 참전 지휘관들은 승승장구하고 영천전투 참전 지휘관들은 그렇지 못해 영천전투가 전공에 비해 빛을 내지 못하고 있는것 아닌가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조 사단장은 “영천전투를 더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영천이 밀렸으면 아군은 전투력이 없다. 부산까지 순식간에 내려갔다. 영천서 괴멸시킨 것이 큰 분수령 이었다. 한국전사에서는 인증하지만 언론에서 다부동을 더 부각하고 있다. 영천서 전투장면 재현 등을 다뤘으면 한다. 앞으로 8사단장에 부임하면 대대장 이상 간부들과 영천대첩비를 참배하고 온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영천대첩 정신이 구국정신이다. 전쟁에서 선배들이 위대했다는 구체적인 전투 사례를 교육에도 강화할 것이다”고 설명했다.

한국전쟁사에 나온 영천전투
영천전투에 얽힌 이야기는 모두 한국전쟁사에 기초한다. 한국전쟁사에 ‘영천전투’ ‘신녕전투가’가 기록됐다. 이 기록은 1970년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에서 당시 지휘관들의 진술을 토대로 만든 전쟁사다. 책 541쪽에 ‘신녕(부근)전투’가 나온다. 기간은 1950년 8월 30일부터 9월 15일까지. 참전부대 및 주요 지휘관을 첫머리에 기록했다. 아군은 2군단장 유재흥 준장을 비롯해 6사단장 김종오 대령, 2연대장 함병선 대령 등과 배속부대, 지원부대 병력 약 8천5백 명이 기록됐다. 적군도 2군단을 비롯해 부대가 나오며 병력은 6천5백 명으로 기록됐다. 책 556쪽에는 ‘영천(부근)전투’가 나온다. 기간은 1950년 9월 5일부터 9월 13일까지. 참전부대 및 주요 지휘관을 첫머리에 기록했다. 아군은 2군단장 유재흥 준장을 비롯해 8사단장 이성가 준장, 배속부대, 공군정찰 등이 기록됐다. 적군은 2군단을 비롯해 15사단, 45연대, 배속부대 등이 기록됐다. 전쟁사 뒤쪽에는 증언인명록이 있는데, 인명록에는 참전부대, 계급, 증언일자 증 당시 인적 사항이 모두 기록됐다. 여기에는 주로 소위부터 대령, 준장까지 증언했으나 일반 병들도 간혹 있다. 현지주민은 군위군 6명이 증언한 것으로 기록됐다.

-본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기금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김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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