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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탐방】 김경림 전 외환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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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이 놓인 상황에 따라 멸사봉공 자세로 최선 다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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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1월 20일(금) 13:56 [영천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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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시 임고면 출신인 김경림 전 외환은행장은 경북사대부고와 서울법대를 졸업한 이후 1966년 한국은행에 입행했다. 이후 금융개선국장, 여신관리국장, 감독기획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 후 한국은행이사와 은행감독원 부원장보를 지냈다. 여신관리제도와 기업구조조정분야의 전문가로 정평이 난 그는 1983년 ‘국제금융 및 자금관리론’을 저술하여 금융계의 실무지침서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2000년 5월 부산은행장으로 재직 중이던 김경림 행장은 외환은행장으로 선임되어 떠나게 되자 부산은행노조가 김경림 행장의 유임을 요구하면서 행장실을 점거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5월 19일 외환은행장으로 취임한 그는 업무파악을 위한 주말강행군을 시작, 토요일 오전부터 시작한 부서별 업무보고는 새벽1시까지 계속됐고 다음날인 일요일 밤 11시에 끝났다. 이 사실이 당시의 경제신문들의 지면에 보도되어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외환은행장으로 취임한 지 1년만인 2001년에 외환위기 후 4년간이나 연속되던 적자행진을 마감하고 흑자로 전환시키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러한 성과는 감사원의 감사에서도 인정되어 2002년 2월 감사원장으로부터 공기업혁신유공자로 표창을 받기도 한 그는 IMF사태이후 금융산업 안정에 큰 족적을 남긴 금융계의 거목이다. 외환은행 재임 2년 동안 본인은 한 번도 휴가를 간적이 없었지만 직원들의 휴가스케줄은 일일이 챙겼던 그는 굳건하고 꼿꼿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 마음이 따뜻한 바위 같아 지금도 많은 후배금융인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또 재경영천향우회의 고문이기도 한 김경림 전 외환은행장은 재경향우회에 많은 관심을 보여주었고, 연로향우들의 친목모임인 영친회(永親會)의 회장직을 5~6년 맡기도 했다. 그리고 2009년에는 영천시장학회에 1000만원을 기탁하여 고향의 후학들을 양성하는 데에도 큰 정성을 쏟기도 했다. 현재 고문으로 재직 중인 법무법인 지평지성의 사무실로 찾아가 평생 금융 외길로 살아온 삶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 임고면 금대리에서 태어나 사리 담골에서 쭉 자라셨네요. 어릴적 고향에 대한 기억이 있다면?
“금대초등학교가 개교한 지 얼마 안 되어 온통 자갈밭인 운동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자갈돌을 골라내면서 풀도 뽑고 플라타너스 나무를 심던 일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빈 도시락에 반찬통 딸그락거리며 검정고무신을 신고 십리도 넘는 길을 하교하던 일, 전근가시는 선생님을 산모퉁이까지 전송하며 눈물 흘리던 일, 방과 후 동무들과 같이 소먹이면서 풀피리 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네요.”
- 경북사대부고를 나와 1964년 서울대법대를 졸업하셨는데요. 학창시절 얘기를 좀 들려주시지요?
“학교 다닐때 영천촌놈이라고 놀려대는 친구들에게 영천대마(大馬)라고 응수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산자수려한 우리 고향 영천의 기를 이어받아 머리가 둔하지는 않았던지 열심히 공부하다보니 서울대법대에 합격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공부만 열심히 하던 학창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하던 해 4·19혁명이 일어나 당시 경무대앞까지 진출한 가두시위에도 참가했었지요. 그리고 서울대학교에서 새생활계몽운동의 일환으로 결성된 향토개척단의 단장을 맡아 농촌봉사활동에도 적극 참여했습니다. 그때 고향인 임고면 사동으로 내려와 고 이활 선생이 증여한 임야를 개간하여 뽕나무단지를 조성하는데 일조한 것이 지금도 가슴 뿌듯한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그것이 효시가 되어 지금의 영천특산품인 영천뽕잎차와 누에제품들이 탄생하게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 사동양조장을 운영하시던 선친(金憲泳)께서는 영천향교 장의(掌議)와 임고서원 유사(有司)를 역임하시면서 영남유림의 맥을 이어오셨는데요?
“선고(先考)께서는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에 사동양조장을 운영하면서도 조상 대대로 지켜온 유가(儒家)의 전통과 유생(儒生)의 본분을 잊지 않고 온후한 성품으로 덕을 베풀어 인심을 잃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밀주단속을 나온 세무 관리들에게 너무 지나친 단속을 하지 말 것과 적발농가에 대한 선처를 당부하던 일들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영천향교의 장의(掌議)와 임고서원의 유사(有司)를 역임하시면서 한편으론 영양, 조양, 화남, 보남, 해선(永陽, 朝陽, 華南, 普南, 海仙)등의 시사(詩社)와 만락, 난국, 문우(晩樂, 蘭菊, 文友) 등 계회(契會)에 동참하여 시우(詩友)들과 함께 시창(詩唱)과 풍류를 즐기는 여유도 가졌습니다. 그때 남기신 유고집(遺稿集)으로는 삼담쉬운창화록과 성담시집((醒潭詩集)이 있습니다. 이 유고집들은 영인본(影印本)으로 간행하여 선고의 인생관과 훈계하신 뜻을 수시로 되새기면서 살아왔습니다. “
- 1966년 한국은행에 입행한 후 부산은행장과 외환은행장을 지내시면서 금융외길을 걸어오셨습니다. 강직하고 성실한 금융인으로 부산은행과 외환은행의 경영정상화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은행의 최고경영자로서의 덕목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
“IMF외환위기때 퇴출위기에 놓인 부산은행과 외환은행을 맡아 주말도 휴일도 없이 무척 고생을 했습니다. 경영정상화를 위한 각종 대책을 마련하고 비전을 제시한 후 임직원들과 함께 혼연 일체되어 추진한 결과 두 은행 모두 취임 1년 만에 우량은행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최고경영자의 길에는 왕도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경영을 맡은 조직이 놓여있는 상황에 따라서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자세로 최선을 다해야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려운 고비마다 어릴 때부터 선고의 가르침이었던 살신성인(殺身成仁)이란 말뜻을 되새겨보곤 했습니다.”
- 외환은행장을 사임하시고 고희를 바라보는 연세임에도 삼성증권(주)이사회 의장, 법무법인 지평지성의 고문, 신한카드 사외 이사로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십니다. 평소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시는지? 든든한 배경이 되는 가족들 얘기도 좀 해주시지요?
“시골출신이라 어릴 때부터 십리길이 넘는 등하굣길을 걸어 다녀선지 타고난 건강 체질이라 건강관리를 위해 특별히 하는 것은 없습니다. 틈나는 데로 등산이나 트레킹을 즐기는 정도지요. 가족으로는 내자(內子)와 세 아들이 있습니다. 내자는 전통적인 유가(儒家)에 시집와서 시부모 모시면서 아들을 키우는 현모양처 역할을 하느라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제가 집안일을 걱정하지 않고 사회생활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내자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큰 처남이 검찰총장과 법무무장관을 지냈는데 독자인 저는 마치 백형(伯兄)처럼 마음을 터놓고 의지하고 지냈습니다. 공직자, 교수, 의사 등으로 중견사회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아들. 며느리 모두 예의범절과 효도의 의미를 좀 알고 지키는 것 같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최동필 서울본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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